기행문 '오도답파여행'은 1917년 6월 26일 경부선 기차에서 소설가 이광수가 조선을 방문한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시마무라 호게쓰와 우연하게 마주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당시 이광수는 스물일곱 살로 와세다대학에 유학 중이었고, 시마무라 호게쓰는 톨스토이의 '부활' 연극 연출로 대중적 인기까지 얻은 마흔일곱 살의 명망 있는 와세다대학 교수였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과 같은 관계였고, 그래서인지 시마무라 호게쓰와의 나눈 대화내용을 적어가는 이광수의 필체는 존경과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안타깝게도 이 명망 있는 일본 학자는 식민지 청년 이광수에게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던 듯하다. 일본 귀국 후 조선방문 감상을 적은 '조선소식'이라는 글에서 '조선에는 시도, 소설도, 연극도 없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시마무라 호게쓰가 조선을 방문한 것은 1917년 6월 20일 무렵으로 조선 최초의 근대소설인 이광수의 '무정'(1917년 6월 14일)이 발표된 직후였다. 하지만 시마무라 호게쓰가 식민지 조선에서 발표된 조선어 소설을 읽었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혹시 그가 '무정'을 읽었다면 판단이 달라졌을까? 이것 역시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와세다대학 글로벌 에듀케이션센터 주최로 제7회 '한국문학 콘테스트'가 개최되었는데 흥미롭게도 이광수의 '무정'이 주제 도서로 제시되었다. 와세다대학 교수 시마무라 호게쓰의 '조선소식'이 발표된 지 거의 100년 뒤이다. 이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일본인 연구자의 감상문이 여러 면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핫토리 테츠야라는 이름의 이 연구자는 명문 게이오대학교 일문학부 출신으로, 일본 '국민작가'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를 전공한 일본문학 전문연구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밝힌 '무정' 감상문의 작성 이유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문화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일본 인터넷에 적혀 있는 잘못된 서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나로서는 다소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정직하게 썼습니다. 이전의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일본에는 인터넷에 적힌 한국에 대한 말만 믿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이 있고, 한국에도 인터넷에 적혀 있는 내용만으로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 한국인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나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작은 계기와 공부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일 수교 50년을 맞는 올해,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의 집단 자위권을 발동하는 안보법안을 통과시키더니 이번에는 스물일곱 살의 한국인 청년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 폭발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한일관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어려운 한 발을 내디딘 일본인 핫토리 테츠야 같은 사람들이 한일 수교 50년을 이어왔고,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한국과 일본 간에는 화해와 상생의 역사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대구미래대 산학협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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