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복면과 가면

요즘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이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는 가면을 제작하는 황재근 씨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황재근 씨가 만드는 것은 '복면'이 아니고 분명히 '가면'이고, 출연자들이 쓰는 것도 분명 '가면'인데 왜 '가면가왕'이라고 하지 않고, '복면가왕'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모국어 화자만이 알 수 있는 복면과 가면에 대한 미세한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영어로는 복면이나 가면 모두 mask로 통용이 된다.)

'복면'(覆面)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얼굴 전부 또는 일부를 헝겊 따위로 싸서 가림. 또는 그러는 데에 쓰는 수건이나 보자기와 같은 물건'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복면의 용도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비해 '가면'(假面)의 의미는 좀 더 복잡하다. 사전에서 '가면'을 보면 '탈'과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며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나무, 종이, 흙 따위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으로 정의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에 더하여 남들에게 보이는 부분을 꾸며서 보여준다는 성격이 강하다. 형태적으로 본다면 복면은 얼굴을 덮는다는 한자의 뜻처럼 천을 뒤집어쓰거나 얼굴을 덮는 형태이며, 얼굴만 가리면 되기 때문에 아무런 장식이나 모양이 없어도 된다. 가면은 한자의 뜻처럼 '가짜 얼굴'이기 때문에 진짜 얼굴을 대체할 수 있는, 꾸며진 모습이 있어야 하고, 얼굴 전체를 덮을 필요는 없다.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 강도나 테러리스트들이 단순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쓰는 것은 복면이고, 오페라의 유령이나 배트맨이 원래 자신의 모습과 다른 위장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은 가면이라고 할 수 있다.

복면과 가면이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가면은 '속뜻을 감추고 겉으로 거짓을 꾸미는 의뭉스러운 얼굴'이나 '위선'과 같은 추상적인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가면은 흔히 페르소나라고 불리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실제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 이 추상적인 의미의 가면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 누구나 쓰게 되는 것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친한 척해야 하고, 직장 회식에서 상사들과 노래방을 갔을 때에는 좋아하지도 않는 트로트를 부르며 신나는 척해야 할 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강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말하고, 위악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은 모두 추상적 의미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가면은 복면처럼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는 것에도 목적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위장된 모습을 진짜인 것처럼 한다는 쪽에 좀 더 강조점이 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천사의 가면을 쓴 악마'와 같은 표현에서 가면을 복면으로 바꾸면 매우 어색해지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복면가왕에서 사용하는 것은 가면이지만, 그 기능은 위장된 인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므로 복면의 기능에 가깝다. 사람들은 가면을 보면서 그냥 재미있다고 생각할 뿐, 가면의 모습을 가수의 또 다른 인격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만약 가면가왕이라고 했다면 가면이 가진 추상적 의미가 더 강조되기 때문에 위선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표현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복면을 쓰게 되면 억눌렸던 악한 성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 인터넷에 익명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경우도 일종의 복면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복면을 하게 되면 가면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복면을 하는 순간 없던 용기가 생기면서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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