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69년 3선 개헌 반대·93년 통합선거법 날치기 거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륜고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재학 시절 응원단장을 지냈던 그는 당시 얼굴에 수염을 길러 '털보 응원단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당시 수염을 기른 이 전 의장은 링컨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키 178㎝, 몸무게 65㎏의 호리호리한 몸매였지만 대학시절 응원단장을 하던 호기가 남아선지 그는 기자 시절 보안법 파동을 국회 의사당 기자석에서 지켜보다 "이 자유당 도둑×들아"라고 소리쳐 국회 속기록에 올랐다는 일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5'16 직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의 인연으로 6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8선을 했다. 한국국민당 총재, 국민신당 총재,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등을 지냈다. 14대와 16대에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치일선에서 은퇴했다. 이 전 의장은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윤보선 대통령의 청와대 기자회견을 이 전 의장이 기사화했다. 당시 박정희 군사정부는 윤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것을 동아일보가 조작해서 혁명 정부와 국민들을 이간시키는 허위 보도를 했다며 이 전 의장을 포고령 위반으로 구속했다. 두 달 반 가까이 육군 형무소에 있었던 이 전 의장은 이때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만났다. 이 전 의장은"박 의장이 맡으면 가난에서 이 나라를 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후일 밝힌 바 있다. 석방된 후 박정희 의장과 단독 회견을 하게 되고 취재를 하면서 이 전 의장은 박 의장의 민족 의식, 자립경제 의지, 자주국방에 대한 신념을 보고 정치에 입문했다.

◆3선 개헌, 목숨 걸고 항명

이 전 의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3선 개헌을 추진하자 완강히 반대했다. 그는 "5'16혁명이 구국 혁명이라면 대통령께서 만드신 헌법을 대통령이 지켜주셔야지 대통령이 만든 헌법을 다시 고쳐서 정권 연장을 한다면 그것은 구국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입니다"라고 항명했다. 이 전 의장은 권력형 부정부패 책임자인 이후락 비서실장'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3선 개헌의 핵심 추진인물로 파악, 두 사람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8대와 9대 국회에 진출하지 못했다.

◆날치기 안 한 국회의장

이 전 의장은 두 번 국회의장을 하면서 날치기를 없앴다. 이 전 의장은 "내가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날치기만은 없어져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어. 여당이 다수를 가지고 날치기를 하니 저것을 어떻게든 없애야 겠다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14대 국회의장이 되자마자 날치기를 없애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의장은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

국회의장을 무당적으로 만들었고, 경호권 발동도 없앴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가 됐고, 김대중 대통령 때도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 전 의장은 끝까지 반대해 본회의 상정을 않았다. 사회권도 부의장에게 안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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