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푸틴의 위엄' 마초주의의 위험한 유혹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1971년생. 경북대 노어노문과 석사(러시아 현대소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박사

포브스 세계 영향력 순위서 3년째 1위

체첸과 전쟁 승리·러 대국 반열에 올려

"푸틴 없는 러시아 상상 안 돼" 여론 커

핵무기 관련 도 넘은 발언에도 '인기'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 1위에 3년 연속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정되었다. '푸틴의 위엄'이라는 우스개 시리즈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정도로 그의 카리스마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슬람국가(IS)와 터키에 대한 다수의 강경한 대응과 발언으로 관심을 끌었다. "IS를 심판하는 것은 신의 몫이다. 그러나 그들을 신에게로 보내는 것은 나의 몫이다" "(IS에) 핵무기를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은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다소 위험해 보이는 이런 발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러시아 밖에도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공산주의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 옐친은 여러 가지로 실정을 했다. 체첸과의 1차 전쟁을 해결하지 못하고 경제 위기와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자존심에 상처가 난 옐친 시대의 러시아를 후계자 푸틴은 다시 대국의 반열에 세웠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또다시 전 세계가 러시아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권력 독점이나 언론 탄압 등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크림반도 합병과 시리아 폭격 이후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인기와 지지율은 더 높아지고만 있다. 지난 6월에는 89%라는 상상도 하기 힘든 지지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치가로서 푸틴의 인기 비결을 한마디로 하자면, 마초주의의 성과라 할 수 있다. 권력을 잡자마자 골칫거리였던 체첸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체첸 테러리스트들이 향후 모스크바에서 행했던 몇 차례의 테러를 냉혹하게 진압하면서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 국가원수들과의 만남에서도 무례해 보일 정도로 본인 페이스를 유지했다. 몇십 분, 어떨 땐 몇 시간 늦는 것도 보통이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가 위기 상황일 때는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모스크바에서 며칠 간 지속되던 대형 화재가 났을 때는 휴가지에서 단숨에 달려와 화재 진압 현장을 지휘하고, 집무실에서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했다. 전직 국가안전부(KGB) 요원이라는 독특한 이력, 유도와 삼보 유단자, 경비행기 운전 등 스포츠 애호가로서의 모습도 푸틴의 마초적인 이미지를 더 강화해준다. 더불어 페이스북 같은 매체도 적극 활용하여 남성적인 매력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친근하게 표현한다.

'남성성'을 앞세운 푸틴의 정치적 영향력은 성적인 퍼포먼스와 자주 연관된다. 투표 독려를 위해 푸틴을 지지하는 젊은 여성들이 옷을 벗기도 했다. 푸틴이 총리로 있던 2011년에는 그의 3선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모스크바 국립대 여대생들이 속옷만 입고 세미누드 달력을 찍기도 했다. 곧바로 이에 반대하는 여학생들이 인권과 언론 탄압의 내용이 담긴 반푸틴 달력을 만들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푸틴을 지지하기 위해 옷을 벗는 여성들과 더불어 반푸틴 시위에서는 조롱의 의미로 콘돔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정치와 성적 표현의 자유 및 그 수위 조절에 대한 문제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푸틴의 정치가 어떤 식으로든 '남성'을 강조하는 마초주의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푸틴의 마초주의는 비록 거칠게 보이지만 내 것은 안전하게 지킨다는 정도로 정치에 활용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발언들은 그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특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은 체르노빌 사고로 핵폭발의 공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들은 "역시 푸틴!"이라는 반응을 얻으며 오히려 그의 입지를 더 강화해주고 있다.

2012년 푸틴이 세 번째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6년이라는 임기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후계자 논쟁이 뜨거웠다. 국방장관 쇼이구, 외무장관 이바노프, 푸틴과 자리를 바꾼 총리 메드베데프 등 여러 명의 이름이 회자되었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푸틴 이후의, 푸틴이 없는 러시아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여론이다. "그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과거 여대생들이 달력에서 했던 이 말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