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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민간교류로 이어진 300년 전 선비가 쓴 '사부곡'

12일 전남 보성문화원에서 열린
12일 전남 보성문화원에서 열린 '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장흥임씨대종회 임기호 회장이 조원경(오른쪽) 나라얼연구소 이사장에게 문중의 뜻을 담아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김진만 기자

약 300년 전 전라도 한 선비가 쓴 사부곡(思婦曲)이 최근 경상도에서 한글 번역본으로 다시 태어났고,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이 선비의 고향에서 열리는 등 영'호남의 민간교류로 이어져 주목받고 있다.

12일 전남 보성문화원에서는 '조선시대 선비 임재당 도망시(悼亡詩)-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라는 책은 약 300년 전 전남 보성에서 살았던 선비 임재당(任再堂'1686∼1726)이 남긴 일기인 '갑진일록'을 경북 경산의 (사)나라얼연구소 조원경 이사장이 지난해 8월 한 고서적 경매사이트에서 발견'구입해 한글로 번역'출판(본지 1일 자 9면 보도)한 것.

갑진일록은 임재당이 21세 때 부인으로 맞은 풍산 홍씨(1683∼1724)가 숨지기 9일 전인 갑진년(1724) 6월 20일부터 쓰기 시작해 병오년(1726) 5월 1일까지 약 2년 동안 쓴 일기다. 표지를 포함해 44쪽 분량. 먼저 세상을 뜬 부인을 그리는 내용으로, 부인의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과정과 부인을 그리워하며 슬픈 마음을 애틋하고 감동적으로 표현한 한시(漢詩)로 된 도망시 100편, 제문 등이 날짜 순으로 구성됐다.

이번 출판기념회를 주최한 장흥임씨대종회 임기호 회장은 "약 300년 전 선조님의 일기에는 부부애와 부인을 잃은 후 한과 슬픔에 젖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면서 "조선시대 장례 풍속과 상부상조 미덕, 양자 입양 시 형제들이 모여 작성한 협의문서 등 당시의 사회풍속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황영례 나라얼연구소장은 " 약 300년 전 전남 보성의 임재당 선비가 한문으로 쓴 일기가 3세기 가까이 지나 선비의 출생지나 세거지가 아닌 경상도 땅에서 발견돼 누구나 읽기 쉬운 한글 번역본으로 재탄생 했다. 이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나라얼을 더욱 계승 발전시키고 영'호남 문화의 민간교류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용부 보성군수는 "고향의 임재당 선비가 약 300년 전 남긴 일기와 일기 속 도망시라는 귀중한 자료가 경상도 땅에서 발견돼 한글판으로 누구나 읽기 쉽게 재탄생한 데 대해 기쁘고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이 일기와 도망시가 한문 원본과 한글 번역본이 함께 출판돼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전시, 우리 국민들 모두가 흠모하고 사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글 번역본을 출판한 조원경 이사장은 "조선시대 여러 학자와 선비들이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는 시나 제문을 남겼지만 남을 의식해 형식적인 것이 많다. 하지만 임재당은 타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심정을 일기와 100편의 한시로 표현한 것은 분량상으로 볼 때 매우 많고, 그 내용 또한 애틋하고 감동적이라 읽는자가 눈물없이 읽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앞으로 장흥임씨대종회와 보성군이 임재당이 남긴 이 일기와 일기 속 도망시에 대한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안동의 400여 년 된 무덤에서 발견된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쓴 '원이 엄마의 편지' 못지않게 갑진일록의 가치와 감동을 다양한 콘텐츠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전남 보성에서 김진만 기자 fact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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