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사람이 우선이다

강의를 위해 자동차로 직접 운전하면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눈 속으로 뭔가가 훅 들어가는가 싶더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운전을 할 수도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 비상 깜빡이를 켜고 안과 병원을 찾았다. 마침 안과 간판이 보여 길에 차를 거의 버리다시피 하고 병원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나는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눈을 뜰 수조차 없을 뿐 아니라, 눈이 크게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 두렵고 다급한 마음이었다.

마침 병원은 대기 환자가 없는 조용한 상황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어요. 너무 아파서 차도 대로에 던져두고 왔으니 빨리 처치 좀 해 주세요."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상태로 나는 간호사에게 다급히 요청했다. 그런데 안내 데스크에 나란히 앉아 있던 세 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이 신상명세를 기록하라며 쪽지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처음 방문이니 신상명세서를 기록해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절차려니 하고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적어서 건넸다. 그런데 잠시 뒤 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간호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시력 검사실이 아닌가. 숟가락 같은 도구를 한쪽 눈에 대고 시력검사를 하자는 거다! 그것이 절차라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은 내가 큰 소리로 통증을 호소하게 만들었고, 그제야 진료실에 있던 의사가 나와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눈 속에는 길이 10여㎝의 실 같은 이물질이 들어가 있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일보다 직원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직원은 회사의 시스템보다 함께하는 동료나 고객을 우선시해야 한다. '사람' 그 자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성은 상실한 채 시스템을 보호막이라 여기고, 사명이나 책임감은 내동댕이친 직업윤리 의식은 이 사회 전반을 썩어들어 가게 만든다. "난 규칙대로 했을 뿐"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책임을 묻어버리고 안도하는 기계적인 인간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친위대 장교인 아이히만. 그가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가스실로 보낸 동기는 단순한 의무감이었다. 규칙과 복종이라는 도피처 뒤에 숨어서 그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조직이 규정한 제도나 시스템 속에 갇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양심과 공감,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에게 안전하고 평온한 세상을 물려줄 수 있겠는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사람을 중심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것. 그것이 지혜일 거라 생각한다.

세종스피치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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