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자신의 생가인 임청각(안동 법흥동)을 일본인에게 팔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매 계약서가 처음으로 발견돼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석주 선생의 나라 사랑 정신이 또다시 조명되고 있다.
석주 선생의 집안에서만 9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자 일제는 석주 선생 집안의 '기'(氣)를 말살하기 위해 임청각 앞으로 철길을 놓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임청각은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살아 있는 증거이지만 그 위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임청각 매매 계약서의 의미
석주 선생은 경술국치로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이듬해인 1911년 1월 '한순간도 오랑캐 땅에서 살 수 없다'며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떠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내는 등 항일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다.
그는 자신의 몸, 재산, 가족 등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 애국지사였다. 이번 임청각 매매 계약서는 바로 그 증거물이다.
지금까지 임청각 매각과 관련한 문서는 1913년 음력 6월 21일 문중 사람 3명에게 매매했다는 내용의 것으로 계약주들의 도장이 없는 등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최초로 발견된 문서1 '계약서'와 문서2 '계약증'에는 계약주들의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실제로 매각을 고증할 수 있는 문서다.
'계약서'는 임청각 집과 뒷산(영남산)을 2천원에 매도할 뜻이 있음을 나타낸 것이며, '계약증'은 이창희(석주 선생의 집안사람) 씨를 보증인으로 한 정식 매매 문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매입하는 계약주는 '오카마 후사지로우'(小鎌房次郞)라는 일본인, 매도 계약주로 등장하는 '이종엽'(李鍾燁)이라는 인물은 족보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뤄 석주 선생의 아들인 이준형 선생의 가명일 것으로 보인다.
계약서를 발견'소장하고 있는 이재업 유교문화보존회장은 "석주 선생은 만주에서 아들인 이준형 선생을 안동으로 보내 일본인에게 임청각을 팔았다. 이후 이준형 선생은 2천원에 임청각 등을 팔아 만주로 갔다"고 했다. 그 당시 100원이면 양반가 한옥 1채 정도를 살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2천원이라면 무려 20채가 넘는 집값에 해당되는 거액이라고 향토 사학자들은 추정했다.
◆주인 없이 떠돈 80년, 비운의 임청각
석주 선생이 임청각을 판 지 두 달여 만에 선생의 고성 이씨 문중은 3천원을 모금해 다시 이 집을 사들였다. 청송에 있는 천석꾼 집안 사람이 1천원을 내고, 문중 사람 3명이 보증을 서 안동 갑부에게 2천원을 빌렸으며, 나중에 길안 천지리에 있던 문중 소유 논밭을 팔아 빚을 갚았다.
이후 일제가 호적제를 시행하면서 재산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호적을 만들어야 했지만 석주 선생과 아들, 손자 등은 일제 치하의 삶을 치욕으로 여겨 끝까지 호적을 만들지 않았다. 결국 소유권이 석주 선생 직계 이름으로 올라가지 못했고 임청각은 1932년 고성 이씨 집안의 다른 사람 앞으로 등기돼 소유권이 넘어갔다.
해방 무렵 독립운동가 집안 대다수가 몹시 어려웠고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현 광복회 경북지부장) 씨도 고아원을 전전하는 신세였다. 그가 '임청각이 석주 선생 직계가 아닌 다른 집안 4명의 소유로 돼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2000년 초였다. 죽기 전 독립운동에 몸바친 조상이 산 집의 소유권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은 이 씨는 그 길로 법적인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소유권 이전을 위해 동의를 받아야 하는 집안 관계자만 무려 68명에 이르렀다. 10년 노력 끝에 이 씨는 지난 2010년 8월 4일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 소유권 되찾기를 마무리했다.
◆임청각은 건축물대장도 없는 미등기 건물
석주 선생의 후손이 10년에 걸친 법정 투쟁 끝에 소유권을 되찾았지만 임청각은 지금까지 미등기 건물로 남아 있다. 쉬운 말로 '무허가 건축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원래의 주인을 찾기 위해 10여 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후손들을 찾아 나서고, 두 차례의 소송을 벌였던 석주 증손자 이항증 씨와 고성 이씨 후손 이동일 광복회 안동시지회장은 지난 5년 동안 안동시를 상대로 '문중 이름의 등기보와 건축물대장 만들기'를 해왔다. 그러나 곳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법원은 당초 판결문에서 "소유권 등기에 명시된 4명은 원 소유자인 문중과의 매매 계약 사실이 없어 지금의 등기는 원인무효로서 말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씨 등이 이 판결문을 기초로 새로운 등기를 시도하자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임청각은 기존 소유권에 대한 등기말소 사실만 판시하고, 문중을 소유권으로 인정해 새로운 등기를 하라는 내용이 빠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동일 광복회 안동시지회장은 "임청각이라는 건물에 대한 기존의 등기가 말소됐는데 현행 법률로 따지면 새로운 건축물로 지어지지 않는 한 임청각을 등기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안동시 건축물대장도 만들 수 없는 상태다. 앞으로 임청각의 새로운 등기를 위해 국회나 청와대 등에 탄원을 내고 특별법을 만드는 등 험난한 길을 더 걸어야 한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8월 99칸 규모였던 고성 이씨 종택인 안동 임청각과 관련, "1940년 중앙선 개통 당시 행랑채 등 일부가 강제로 철거됐다. 2020년까지 우회 철도를 개설하고 훼손된 전각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동 유림단체 한 관계자는 "문화재 살리기에 나선다고 밝힌 문화재청과 안동시가 임청각이 무허가 건물인지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독립운동 후손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는 행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중앙 및 지방정부가 직접 나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중심을 제대로 살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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