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 새評] '새 정치'란 무엇이었나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한때 희망이었던 안철수의 '새 정치'

3년 만에 실체 없는 구호로만 남아

총선 공천·대선 후보 자리 얻기 위한

탈당·당 흔들기는 정당화 될 수 없어

한때 그는 희망이었다. 그가 던진 '새 정치'의 화두는 낡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유권자들에게는 복음이었다. 하지만 그 구호는 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막연한 기대 못지않게 그 실체가 막연한 것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새 정치'는 '창조경제'와 더불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호로 남았다. 

그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새 정치'가 무엇인지 설명할 충분한 시간과, 그것을 실현할 충분한 권력이 있었다. 대중의 지지도 모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고는 제 손으로 만든 당을 스스로 떠나고 말았다. 그런 자신에게서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본다.

뭘 하려는 걸까? '새정치민주연합'에 합류하기 전에 구상했던 그런 당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3년 전과 달리 대중들은 그의 '새 정치'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그가 제 약속을 깨고 자신이 구정치로 규정한 민주당에 합류하는 순간 그의 곁을 떠났다. 대중의 지지도 예전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한때 그의 주변에는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결국 그가 모을 수 있는 인원이라야 새정치연합에서 떨어져 나온 탈당파들, 아니면 노골적으로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신당 세력뿐이다. 이들을 모아 '새 정치'를 하겠다고 한다면, 세인의 비웃음만 살 게다.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일까?

그의 멘토인 한상진 교수는 한 일간신문에 이렇게 썼다.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 그의 탈당 기자회견문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안에서 도저히 안 된다면, 밖에서라도 강한 충격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결국 밖에서 강하게 때려 제1야당을 무너뜨리겠다는 얘기다.

변변한 세력이 없는 그가 제1야당을 무너뜨리려면 협력자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게 이른바 '비주류'다. 이들은 탈당 안 하고 남아 안에서 집요하게 문재인 대표 체제를 때려댈 것이다. 이렇게 안에서 당을 때려 그들이 얻어내려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문 대표가 쥐고 있는 당권과 공천권이다.

리더십을 무너뜨려 혁신마저 좌초시키면 총선의 승리는 요원해진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당선이요, 거기에 필요한 공천으로 보인다. 총선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안철수가 얻어낼 것은 무엇인가? 바로 대선 후보 자리다. 한 교수의 말을 기억해 보자.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

새정치연합 사태의 본질은 한마디로 비주류와 안철수가 '총선 공천'과 '대선 후보'를 서로 맞바꾸는,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는 정치적 거래에 있다. 안철수 의원은 문 대표의 것보다 "더 큰 혁신"을 하겠단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와 손을 잡은 세력들은 문 대표가 한다는 '작은 혁신'조차도 거부하는 이들이다. 그가 표방하는 새 정치가 고작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물론 대표에게 '물러나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가 사퇴를 거절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를 굳이 사퇴시켜야겠다면 정해진 당헌 당규에 따라 공식적으로 불신임 절차를 밟든지, 그게 싫으면 다음 선거를 기다릴 일이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당원의 총의로 선출된 당대표를 지저분하게 흔들어대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문 대표는 당의 혁신안은 물론이고 안철수의 것까지 철저히 관철시켜야 한다. 빌어먹을 계파 정치를 해체하려면, 제 살부터 깎는 아픔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행여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되겠지만, 비주류의 요구 중에서 타당한 게 있다면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

이 위기를 정치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한 번쯤은 겪어야 할 담금질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위기는 동시에 기회인 법이다. 그가 누구처럼 이 기회를 허무하게 날리지 않기를 바란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