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추풍령~서울~신의주를 거쳐 서간도에 이르는 여정은 멀고도 험난했다. 부녀자와 어린아이까지 섞인 일행이 모진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며 삭풍이 몰아치는 만주 벌판을 지나는 길은 참으로 혹독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이 나라 잃은 설움보다는 못했다. 그래서 자처한 형극의 길이었다. 책이나 읽으며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던 명문가의 후손 석주 이상룡은 경술국치 이듬해 벽두에 그렇게 만주 망명을 결행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지를 처분해 독립운동기지 건설 자금을 마련한 채 기약없이 떠난 길이었다. 무릎 꿇어 일제의 종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재산도 목숨도 아깝지 않았다. 석주는 자신의 생가이자 종택이었던 임청각(臨淸閣)도 그렇게 처분했다.
그런데 입으로만 전해오던 임청각 매각 사실이 이번에 문서로 처음 확인됐다. 고성 이씨 문중 후손인 이재업 유교문화보존회장이 한국국학진흥원에 의뢰해 집안의 고문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임청각 매매계약서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배출한 임청각의 현주소는 무허가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다.
광복 후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 광복회 경북지부장 등 후손들이 10년에 걸친 우여곡절과 소송 끝에 다른 집안 명의로 된 등기를 바로잡았지만, 지금까지 새 주인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채 미등기 건물로 방치되어 왔다는 것이다. 법원 판결에서 기존 소유권에 대한 등기말소 사실만 밝혔을 뿐, 석주의 후손에게 소유권을 인정해 새로운 등기를 하라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간도 독립군의 개척자로 우리 항일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석주의 고택을 건축물대장도 없는 무허가 건물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또한, 문화재청도 일제가 철도를 개설하면서 훼손한 임청각의 본모습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번 기회에 정부와 관련 기관단체가 발벗고 나서 임청각이 제 자리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립운동만도 큰 빚을 진 셈인데 그의 유산을 무허가 건물로 내버려 둔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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