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야당 공동대표 지냈던 안철수
정치 혁신 위해 당을 떠난건 '충격적'
낡은 정치 실망한 사람 결집'세력화
지금 야당에는 정치적 상상력 부족
어떤 사태가 설명이나 증명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될 때 통상 자명하다고 말한다. 아침이면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사실이 자명한 것처럼 인간이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설명을 필요치 않는다. 인간 종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연한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 정말 자명한 것인가? 한때 공동대표까지 맡았던 분이 야당의 혁신을 위해 당을 떠난 충격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정치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상식을 뛰어넘는 모든 말들이 선문답처럼 들릴 뿐이다. 안에서 안 된 혁신이 밖에서는 가능한가?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는 길이 야당을 분열시키는 것인가?
지금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벽 앞'에 서 있는 것은 사실 국민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필수적인 건강한 야당의 모습이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야당은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방향을 능동적으로 제시하기는커녕 반대와 비판만을 정치적 행위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다간 아무런 구심점 없이 서로 비방하고 헐뜯는 것을 민주적 문화로 착각할까 두렵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집권당은 집중할 줄 아는 데 반해 야당은 본래 이리저리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편견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프레임이 고착되면 기득권을 위한 낡은 정치만 굳어지고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치는 불가능해진다. 야당의 혁신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야당은 왜 지리멸렬 상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기득권 세력에 반대하여 새로운 정치를 내세웠던 야당 정치인들은 왜 집권 능력은 키우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정치 행태만 닮아가는 것일까? 한 명 한 명을 보면 좋은 사람들인데 왜 정치적 세력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정치적 권력에 가장 필요한 두 가지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는 개별적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인류가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게 된 요인이기도 하다. 라는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아주 맛깔스럽게 서술한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인간이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지배하는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수십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와 수억 명을 통치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는 힘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비결은 모든 사람이 믿는 신화와 종교 같은 '상상의 질서'와 이를 통해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조직'의 출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설령 서로 모를지라도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로 만난 적 없는 세계의 시민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협력하고, 채식주의자들은 생태적 가치를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한다. 권력을 잡으려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허구를 만들어내 조직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야당에게 없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면서 한 말은 지금 야당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분명합니다." 사람들을 모을 정치적 이념과 방향은 나침반이고 이 이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세력화할 조직은 지도인데 나침반과 지도도 없이 어떻게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집권당은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이라는 정치적 허구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탁월한 조직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야당이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낡은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을 결집시키고 세력화할 수 있는 허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이 자명한 사실이 더 이상 자명하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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