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정부는 세계 전기업체에 경기장 주변을 밝힐 가로등 입찰을 부쳤다. 내한(耐寒), 내구(耐久), 광원(光源) 품질, 미관 등 엄격한 심사를 거쳤다. 낙찰업체가 호명될 때 의자를 박차고 환호성을 지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대구 기업 '테크엔'의 이영섭(56) 대표였다.
이 대표의 성공 스토리 배경엔 'LED용 금속열전도핀 삽입형 방열기술'이라는 국제 특허가 있었다. 이 특허는 세계 LED 업계에서 수십억원을 제시할 정도로 독보적 기술 우위를 인정받고 있다. 국내 LED 시장에서도 테크엔의 입지는 '빅3'에 이름을 올리고 대기업들과 당당히 수주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외 LED시장에서 빛을 밝히고 있는 테크엔의 이영섭 대표. 이 대표가 더 빛나는 이유는 끊임없는 봉사와 기부 열정이다. 창업 6년 만에 누적 기부액이 20억원을 넘어섰고 내년엔 '품격 있는 기부'를 위해 재단 설립까지 계획하고 있다. '기술'로 '기부'로 지역을 밝게 비추고 있는 이 대표를 테크엔 사무실에서 만나 보았다.
◆"당신네 특허기술을 60억원에 사겠소"
이건희 회장 어록 중에 '원천 기술은 달나라까지 가서라도 사와라'라는 말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자동차, 전자, 조선 분야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지만 핵심기술의 대부분은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허 로열티만 매년 수십조원에 이를 정도다.
테크엔은 대기업들도 가지기 힘든 원천기술을 세 개나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금속열전도핀 삽입형 방열기술'이다. LED 조명은 전력 효율과 내구 수명에서 기존의 조명 제품을 훨씬 뛰어넘었지만 발열 부분에서 기술적 취약점을 보여왔다. 빛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방출해주지 않으면 칩, 회로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열(放熱) 기술을 테크엔이 획기적로 개선한 것이다. "LED등에 우리 기술을 적용하면 광효율, 내구성, 절전효과가 30%나 올라갑니다. 쉽게 계산해서 조명등 수명이 2만 시간이 더 늘어나는 거죠. 광(光) 품질도 훨씬 뛰어납니다."
이제까지 모두 18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이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실내조명, 보안등, 가로등 등 60여 가지 조명기구를 생산하고 있다. '핀 삽입형 방열기술'은 미국 특허를 받을 때 전문가들이 "이런 뛰어난 기술은 다른 업체들이 베끼지 못하게 '보안특허'까지 받아 놓으라"고 권유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특허다. 세계적 우량 기술을 탐내는 대기업들의 러브콜도 줄을 이었다. 삼성전자와 LG이노텍이 기술 제휴 문의를 해왔고 일본 니치아는 특허기술을 60억원에 사겠다고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일본 산요에서 LED 전문가로 성장
베이비 붐 세대들이 대개 그러하듯 1959년생인 이 대표도 의식주와 학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학비를 모은 후에 마산 창신공고 야간부에 입학했을 정도로 살림이 궁핍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이 대표의 꿈과 포부는 주눅들지 않았다. 재학 중에 일본 국무성 국비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뛰어났고 고교 졸업 후 산요(SANYO)전기에 특채 되었다. 12년 동안 일본의 전기산업 현장에서 중견 간부까지 오르면서 일본의 LED 산업 전문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LED 분야에서 당시 일본은 10년 정도 한국을 앞서고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국내에는 백열등, 형광등 시대였으니까요. 한국에 가서 LED 산업을 시작하면 큰돈도 되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1988년 귀국한 이 대표는 '보성전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비행장 활주로에 철탑유지, 보수까지 맡을 정도로 사업을 키워 갔지만 그도 IMF라는 국가적 재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목숨과도 같은 특허기술까지 넘겨 버릴 정도로 빈털터리가 되었다. 실의에 빠진 그가 다시 재기에 나서게 된 것은 '원천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2006년 '코리아반도체'라는 회사로 다시 일어섰고 현재 테크엔 회사를 설립하는 동안 모두 18개의 특허를 따내며 기술 강소(强小)기업으로 도약했다.
◆2009년 회사 설립 후 누적 기부액 20억원
테크엔이 제일 먼저 시작한 사회 환원 사업은 학교 주변을 밝히는 일이었다. 여기엔 고학시절 흐릿한 전등 밑에서 책과 씨름하던 이 대표의 아픔이 배어 있다. 2013년 총 2억6천만원을 들여 서재중, 서재초교, 도림초교 등 5개 교에 강당, 운동장 조명을 LED로 바꿔주었다. 특히 달성군 내 저소득층 300가구에 LED조명을 달아주었던 '희망등불 밝히기' 사업은 정부에서도 사회사업으로 채택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작년에는 총 4억5천만원을 들여 사문진나루터, 화원초교, 다사초교에도 등을 밝혀 주었고 교육 기부에도 나서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 산학협력 협약을 맺고 이공계 연구기금 1억원을 출연했다. 매출 170억원을 넘어선 올해는 기부액이 벌써 8억원을 넘어섰다. 현풍중고, 성서고, 대구보훈요양원의 전등시설을 교체했고 성주군, 대구 남구청에 장학금을 내놓았다. "매출액의 5%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을 꼭 지켜갈 겁니다. 2009년 회사 창립 후 누적 금액이 20억원을 넘어섰어요. 내년엔 재단을 별도로 설립해 체계적인 기부사업을 펼칠 예정입니다."
◆달성의 빛, 곧 세계의 가로 비출 것
테크엔의 LED조명은 국내 도심의 가로, 공장을 넘어 멀리 러시아, 말레이시아의 도심과 가로를 비추고 있다. 테크엔의 빛은 '광선' 외에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나눔의 빛'이다. 회사 홍보물에도'빛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라'는 문구를 넣었을 정도로 자선과 봉사에 힘을 쏟고 있다. 테크엔은 내년에 구지국가산단으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다. 생산 규모를 3배로 확대하고 생산모드도 수출 위주로 바꿀 예정이다. 올해 30만달러였던 수출 규모는 곧 100만달러 수출탑을 향해 달리게 될 것이다. 서재, 달성의 골목을 비추던 테크엔의 조명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의 가로(街路)와 공장을 환히 비추게 될 것이다.
◇기술인 열정'자부심 밴 '장영실상' 가장 자랑스러워
테크엔의 화려한 수상 경력
테크엔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각종 상패, 상장에 놀라게 된다. 기관장 감사패부터 훈포장까지 수십 종을 헤아린다. 모든 상에도 약간의 호불호와 개인적인 애착은 있을 수 있는 법. 이 대표를 만나 '상품평'(賞品評)을 들어봤다.
-이 대표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은?
▶올해 받은 '장영실상'이다. 이 상은 국내 최고 권위의 산업기술인상이다. 중소기업 중 본사가 최초 수상으로 알고 있다. 세종은 평민이었던 장영실을 지금의 장관급에 앉히고 천문, 기상, 측량 등 분야를 연구하게 했다. 당시 사농공상의 분별이 엄격했던 당시에 파격적인 일이었다. 지금 이공계, 공고 출신들을 홀대하는 사회 현실에서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다.
-가장 격(格)이 높은 상은?
▶5월에 '한국전기대상 시상식'에서 받은 산업포장이다. 일종의 훈장 성격이고 대통령상보다 격이 높다. 수상 소감에서 밝힌 대로 이 상엔 '나의 37년 전기 인생'이 녹아 있다.
-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교육기부상을 받았다는데.
▶2014년 '학교 등불 밝히기 LED 프로젝트'가 전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역 초중고 20여 곳의 강당과 운동장을 밝히는 사업이었다. 한 지자체에서 시작한 조그만 봉사가 정부 정책에 채택될 정도로 중요한 자취를 남기게 돼 무척 영광스럽다.
-여러 상 중 기술개발과 관련된 상들이 많은데.
▶2013년 전기문화대상(산자부), 기술대상 특별상, 벤처기업산업대상(중기청장), 대한민국 조명대상, 엔지니어상(창조과학부) 등 30회가 넘는다. 공고 시절부터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조국 근대화의 기수'란 견장을 달고 한눈팔지 않고 연구에 매달린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한상갑 기자
◆이영섭 대표 걸어온 길
1959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마산 창신공고 야간부를 다녔다. 재학 중 일본 문부성 장학생에 선발되었고 졸업 후 일본 산요에 특채돼 12년을 근무했다. 1988년 귀국해 보성전기, 코리아반도체를 거쳐 현재의 테크엔을 설립했다. 'LED용 금속열전도핀 삽입형 방열기술'로 국제 특허를 받았고 모두 18개의 국내외 특허를 가지고 있다. 장영실상, 국무총리상, 교육기부대상, 산업포장 등을 수상했다.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