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한 해를 보내며

1950년 경주 출생. 대구고·성균관대 법학과 졸.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시작에만 집중, 끝맺음이 흐지부지하면

내년에도 작심삼일 같은 일들이 되풀이

연말 함께 어울린 송년회·파티도 좋지만

여유 갖고 한 해 정리하면 더 좋지 않을까

예전에 한 선배가 우스갯소리처럼 내게 '시간은 나이에 비례해서 빨리 흐른다'고 말해줬었다. 30대에는 30㎞, 40대에는 40㎞, 50대에는 50㎞, 60대에는 60㎞의 속도로 시간이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만큼 세월의 흐름을 잘 표현한 말이 없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도 이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달력 첫 장을 넘긴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마지막 장인 걸 보면, 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구나 싶다. 지난 시간을 조용히 돌아보니 '그 많던 시간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2015년을 맞이하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기대와 희망을 갖고 많은 새로운 계획들을 세웠었다. 특히, 그동안 바쁜 직장생활을 핑계로 미뤄왔던 가족과의 시간 보내기를 야심 차게 계획했었다. 하지만 계획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생각만큼 많은 시간들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큰 한 해였다. 이렇듯 올 한 해를 뒤돌아보면 아쉬운 사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정리하는 연말이 되면 '좀 더 노력할 걸' '더 열심히 살았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2015년이 며칠 남지 않은 요즘, 나는 어떻게 하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나와는 달리, 주위 사람들은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기대와 설렘 속에 내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달성해야 할지 계획과 목표 세우기에 한창이다.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손주 녀석도 내년에는 꼭 태권도를 배우겠다는 의욕이 가득했다. 새해를 기다리고, 각종 계획을 세우는 모습들을 보면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새로 무엇을 시작하려고 결심하거나 시작할 때 이 말을 사용하곤 한다. 물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에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때때로 '끝맺음'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作心三日'(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는 모두가 알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인 이 사자성어는 일을 함에 있어 제대로 된 끝맺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자성어다. 흔히 연말이 되면 송년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과 술자리가 늘어나고, 새해를 맞이할 준비에 분주해진다.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이 담긴 연하장을 쓰기도 하고, 내년도 달력과 새 다이어리를 준비하며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푸는 시기이다. 각자만의 새해 목표를 세워보기도 할 것이고,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인생의 전환점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다가오는 새해에 대해 기대와 설렘을 가지는 것도 좋고, 다음 해에는 올해보다 더욱 이루는 일들이 많기를 바라며 꼼꼼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남아있는 올해를 돌이켜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끝맺음이 없다면, 시작만 거창하고 끝은 흐지부지한 한 해가 또다시 반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더 고요하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송년회, 파티도 좋지만 남아있는 올해의 마지막은 쉼 없는 행동과 생각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시간으로 만들어보자.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듯 여유를 갖고 새로움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면, 첫 달부터 새로운 다짐과 계획들로 가득 채워질 2016년이 더욱 힘차게 다가올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