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로 유행한 말은 아마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와 같이 수저를 통해서 계급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말들은 IMF 이후에 계속된 중산층의 붕괴와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계급화된 사회를 자조적으로 지칭할 때 쓰고 있다. 중산층이 두껍게 존재할 때는 경제적 간격이 크지 않고,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위치를 나타낼 때는 '계급'보다 '계층'이라는 말이 더 적절했다. 이에 비해 '계급'이라는 말은 '계층'에 비해 선천적으로 타고나며, 이동이 쉽지 않다는 의미가 강하다.
죽으라고 노력을 해도 취업을 하기 어려운 세상에, 그나마 얻은 일자리도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인 데 비해, 어떤 이는 부모의 후광으로 쉽게 좋은 일자리를 얻는, 점점 계급화되어 가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누리꾼들이 찾은 말은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영어 속담이었다. 영어 문화권에서 은수저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부유한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많은 재산과 높은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은수저를 사용한다는 생활의 일부분으로 부유한 귀족들의 생활 전체를 표현하는 대유법을 사용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집집마다 혼수로 장만해 온 은수저 세트가 있고, 은에 대해서는 그렇게 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은수저'라는 말은 공감을 얻기 어려운 표현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바로 '금수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금은 지나치게 무겁고 재질이 물러서 수저로 사용하기 어렵다. 만약 금으로 수저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장식용으로 사용하거나, 도난 위험 때문에 장롱 깊숙이 숨겨둘 수밖에 없는 물건이다. 은수저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만, 금수저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이유도 이것이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금수저는 '금'은'동'의 등급에서 유추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은수저보다는 계급을 표현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재료의 등급에서 유추하여 '다이아몬드수저, 나무수저, 흙수저'와 같은 말들도 생겨났다. 다이아몬드수저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고, 나무수저나 흙수저(도자기 혹은 세라믹 재질의 수저)는 건강을 위해 사용하는 고급 수저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재료의 우열만으로 등급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하층을 나타내는 데에는 '일회용수저'가 더 적절하겠지만 '흙수저'를 최하층에 두는 것은 재료의 성질 비교라는 그 나름의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려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젊은 누리꾼들의 생각과 달리 수저와 관련해서 지금 30대 이상 세대들의 기억 속에는 두 종류의 수저밖에 없다. 바로 '아부지수저'와 그냥 수저이다. 예전에는 어느 집이나 밥상에 다른 수저와는 다른, 놋으로 된 묵직한 수저가 놓였다. 만약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는데 자기 앞에 그런 수저가 놓이면 꼭 먼저 물어보는 말이 "이거 혹시 '아부지수저' 아이가?"였다. '아부지수저'는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를 상징하는 특별한 수저였고, 아무나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부지수저도 몇 번 바뀌기기는 했지만 무게는 변함이 없었다. 수저를 놓을 때 만져보면 그 무게감이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동시에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그 무거운 수저로 아무 말 없이 식사를 하시는 모습에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나머지는 이 아부지가 다 책임질 테니까.' 하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부지수저를 보기도 어려운 세상이고, 보통 아버지들은 금수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미안함만 묵직하게 느끼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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