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8시, 달서구 죽전동의 한 커피 전문점. 가볍게 흘러나오던 음악 소리가 멈추고, 반주음악(MR)이 나오더니 한 손님이 슬그머니 일어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를 시작했다. 손님들이 다소 어리둥절하는 동안 다른 쪽 자리의 여성 손님이 따라 불렀다.
이어 서빙을 하던 여성과 커피를 뽑던 남성, 2층 계단에서 내려온 여성이 합세했다. 게릴라 콘서트 형식으로 30여 분 동안 이어진 이날 공연은 '아무도 잠들지 마라'(푸치니 투란도트), '여자의 마음'(베르디 리골레토) 등 오페라 아리아와 영화음악, 크리스마스 캐럴, 나폴리 민요 등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깜짝 쇼의 주인공은 대구의 젊은 성악가들이 만든 혼성중창단 '인 칸토'였다. 그리고 이 행사는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가 12월 들어 시내 곳곳에서 8차례에 걸쳐 벌인 게릴라 콘서트 가운데 하나였다. 배선주 재단 대표는 "유명 아리아를 통해 오페라를 알림으로써 더 많은 대구시민이 오페라를 즐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현장에서 직접 듣는 연주는 대구 오페라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미 행사를 치른 공연장은 가게나 회사도 있었지만, 롯데백화점 매장, 동성로 대백광장, 대구역 대기실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도 포함됐다. 마지막 공연은 23일 수성구 들안길의 한 식당이다.
게릴라 콘서트의 즐거움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라는 의외성에 있다. 자신과 다름없는 손님 같던 옆자리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노래를 부르고, 아르바이트생으로 알았던 종업원이 서빙을 하다 갑자기 노래를 하는 모습에 많은 사람은 재미있어한다. 사실 이런 공연은 연주자에게는 큰 부담이다. 세밀한 표정과 숨 쉬는 소리까지 여과 없이 곧장 관객에게 전달되어서다. '너의 괴로움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우스개처럼 연주자의 고통은 곧 관객의 즐거움이 된다.
오래전부터 대구는 공연문화중심 도시를 내세웠다. 1천 석이 넘는 공연장이 수두룩하고 오페라, 뮤지컬 등 국제 규모 축제도 어떤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반월당 지하차도에서, 동대구역 대기실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열리는 음악회나 춤판, 연극판이 더 필요하다. 그리고 먼 무대 위가 아니라 손만 내밀면 닿을 곳에서 땀 흘리는 이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곳곳에서 이 같은 난장이 벌어져야 진정한 공연문화중심 도시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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