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라는 경제학 가설이 있다. 초고층 빌딩이 완공되는 시점부터 경제 위기가 시작된다는 주장이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애널리스트 앤드루 로런스가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부터 1990년대 중후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초고층 빌딩 건축붐까지 100년간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다.
1930년대는 대공황 시대이다. 세계 공업 생산력의 44%, 무역의 65%가 증발하면서 자본주의는 끝났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미국 자본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초고층 빌딩이 잇따라 건설됐다. 1930년과 1931년에 각각 완공된 크라이슬러 빌딩(318.8m)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이다.
1970년대에는 세계무역센터(WTC) 1동(417m)과 2동(415m)이 각각 1970년과 1971년 뉴욕에 들어선 데 이어 1974년에는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443m, 현 윌리스 타워)가 완공되면서 세계 최고 기록을 차례로 갈아치웠다. 그러나 1973년 '제1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의 물가 폭등)에 시달리게 된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452m)가 완공된 1997년에는 외환위기가 동아시아를 휩쓸었다.
2004년에는 대만의 '타이베이 금융센터'(508m)가 최고(最高)의 자리에 올랐지만, 대만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경제 침체를 맞았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가 '부르즈 칼리파'(828m, 옛 부르즈 두바이)가 완공되기도 전에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상하이 등 경제 중심지 곳곳에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있지만, 중국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만 하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 앤드루 로런스는 통화정책과의 연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는 돈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되지만, 완공되는 시점에는 경기가 정점을 지나 버블이 꺼지면서 불황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508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건물인 롯데월드타워의 상량식(上樑式)이 22일 열렸다. 상량은 외장공사가 끝났음을 알리는 행사로 사실상 완공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는 최악의 침체에 빠져 있다. 비상조치가 없다면 내년에는 더 할 것이다. 우리도 '마천루의 저주'에서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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