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가진 자에게 몰빵 사회

대한민국이 해방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데올로기로 천명한 지 70년이 되었다. 하지만 성숙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따뜻한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주주의는 차치하고, 자본주의 체제만 본다면 아직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 듯하다. 기계적인 평등주의도 이 나라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된다.

천민자본주의일수록 가진 자에게 혜택과 기회가 쏠린다. 제3세계 국가나 중동, 동남아시아의 왕족국가를 보면 로열패밀리들이 국가의 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리고 있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냉엄한 현실을 보면, 시스템과 체제보다는 아직도 법 앞에서조차도 평등하지 않은 혼돈사회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상업영화의 주된 스토리(내부자들, 베테랑,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등)도 이런 사회를 타파하는 영웅(히어로)이 등장한다.

가진 자에게 몰빵이 되는 사회는 피곤하다.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권력자까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자도 힘을 가진 자라고, 많은 부탁을 받는다. 주로 받는 부탁은 '우리 식구 중 누가 응급실에 있는데, 입원을 하지 못해 무작정 기다릴 수 없으니 어떻게 좀 해달라'. 그러면 동료인 의료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한다. 신기하게도 일은 빨리 처리된다.

비단 의료계뿐이 아니다. 법조계 역시 마찬가지다. 대충 법률상담을 받았던 의뢰인이 기자에게 전화해, '좀 성의있게 해달라. 소송비용도 좀 싸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기자의 전화를 받은 해당 법조인은 의뢰인에게 좀 더 상세한 얘기를 친절하게 해준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유명 뮤지컬'오페라 라이선스 공연이나 국내'외 톱가수들의 콘서트 등이 열리면 VIP 무료 초대권이 주로 지역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돈다. 이들은 충분히 직접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다. 하지만 정작 좋은 공연 한편 보려는 서민들은 몇 달 용돈을 아껴가며 제값 다 치르고 본다. 골프 부킹과 그린피도 마찬가지다. 돈 많은 사람들은 평일 단돈 몇만원에 편안하게 골프를 즐기고, 월급쟁이'자영업자들은 부킹도 어려울뿐더러 주말에 비싼 그린피를 내고, 쫓겨가며 라운딩을 하는 현실이다.

개인적으론 기자라는 직(職)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편리함을 누리는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하자면 이런 '가진 자에게 몰빵 사회'가 싫다. 음지에서 고생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약자인 서민들에게 너무 불평등하고 때론 가혹하기까지 하다. 왜 기자나 높은 직위 또는 큰돈을 가진 자들이 따로 부탁을 해야만 일 처리가 빨리 매끄럽게 잘 되는 걸까. 안정된 시스템과 체제로 돌아간다면 누군가의 부탁은 있으나마나 한 얘기가 될 테고, 누구 잘 아는 사람이 없어도 대한민국에선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와 혜택이 돌아갈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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