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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나는 미쳐봤다!…'단디' 미친 30대, 40대 두 남자 이야기

김준우(43) 씨가 주말을 이용해 동료들과 필드 라운딩에 나선 모습. 김준우 씨 제공
김준우(43) 씨가 주말을 이용해 동료들과 필드 라운딩에 나선 모습. 김준우 씨 제공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말이 참말인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된다. '즐기는 자는 미친 자를 이기지 못한다.'

이렇듯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사람을 우리는 '광'(狂)이라 부른다. 낚시광, 바둑광처럼. 그런데 아무리 그 뜻이 좋다고 한들 미친 사람이라면 듣기 좋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리는 한 분야에 미친 사람을 마니아(mania)라고 완곡하게 표현한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좀 더 와 닿는 말로는 오타쿠(御宅'おたく)가 있겠다.

이번 주는 '2015년, 나는 여기에 미쳐봤다!'라는 주제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취재 과정에서 매일신문 기자들이 느낀 바는 '그들의 남다른 ○○ 사랑은 가히 '미친 사람'이라 부를 만하다'였다. 새해에도 미쳐볼 만한 일을 하나쯤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단디' 미친 30대, 40대 두 남자 이야기

관용적으로 쓰는 표현 가운데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라는 말이 있다. 지금 소개하는 두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로 '단디' 미쳤다. 한 분야에 이만큼 빠져들기도 쉽지 않을 터. 이들이 어떤 연유에서 각자의 영역에 미치게 됐을지 궁금했다.

◆소개팅만 하는 남자

김모(31) 씨는 소개팅 마니아다. 유'초'중'고 교사부터 시작해서 경찰, 학원강사, 은행원, 공무원, 자영업자, 대학 교직원, 사회복지사 등 지금껏 소개팅한 여성의 직업만 나열해도 한참 걸릴 정도다. 그중에 대구가 아닌 타지에 사는 이도 있었다.

올 설 연휴 첫날인 2월 18일 연인에게 이별을 고한 그는 4월부터 12월 21일까지 8개월간 모두 16번의 소개팅을 했다. 어림잡아 2주에 한 번꼴이다. 해가 바뀌기 전 남아 있는 소개팅이 한 차례 더 있다.

김 씨는 "제안받은 소개팅을 다 했더라면 스무 번은 족히 넘었을 거다. 소개팅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 레퍼토리도 몇 가지는 될 정도다. 처음에는 소개팅에 나가기 전 미장원도 들르고 얼굴에 팩도 하고 나갔지만, 이제는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전에 상대방 외모나 신상이 전혀 궁금하지 않을 정도다"며 소개팅에 지쳤다고 말한다.

"소개받는 여성마다 어쩜 그렇게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김 씨는 올해 이토록 소개팅을 많이 한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자신의 나이 때문에 소개받는 여성마다 결혼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결혼 적령기 여성을 만났다. 상대방은 직장도 번듯하고 집안도 좋았지만, 외적 결점이 너무 크게 눈에 띄었다.

김 씨는 "소개받은 사람 중에 사시가 있었는가 하면 머리숱이 적은 여성도 있었다. 어떤 경우는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얼굴이나 차림새가 실제 나이보다 열 살 이상 많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며 "이제는 조건 좋은 여성이 결혼 적령기에 만나는 사람이 없으면 왠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가 만나본 사람 중 한 명은 솔직함이 거부감을 불러왔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상대방을 만나러 간 날, 어디서나 눈에 띌 만한 외모에 세련된 패션 감각에더 직업도 은행원.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그렇게 시원시원한 성격도 없었다. 더욱이 취향도 비슷했다. 이만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런데 헤어질 무렵 상대방이 "이제 저는 연애만 하고 말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결혼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집을 사올 수 있느냐?"고 건넨 말이 김 씨의 기분을 망쳐놨다.

김 씨는 "그 사람은 솔직했을 뿐, 생각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초면에 그렇게 말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 정서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골생골사(Golf生Golf死)

회사원 김준우(43) 씨에게 2015년은 특별했다.

40대 초반의 나이. 늘 건강에는 자신 있다며 술과 담배로 여가를 보냈던 그가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운동에 매진했다. 김씨가 선택한 종목은 골프. 격한 운동에 자신 없어진 나이, 운동도 즐기며 사람들과 교감하려고 골프를 선택했지만, 골프 입문은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다. 골프가 이제는 대중 스포츠라고 하지만 넉넉지 못한 봉급 생활자인 김 씨에게 골프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김 씨에겐 왠지 억울한 기분이 교차했다. 그동안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고 살아왔는데, 남들 다 하는 이까짓 골프 하나 즐기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심한 갈등도 잠시, 결심을 세운 김 씨는 지인에게 골프클럽을 물려받고 본격적인 아마추어 골퍼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결심 덕일까. 다소 늦은 나이에 골프를 시작한 김 씨는 입문 3개월 만에 스크린 90타, 필드라운딩 100타의 벽을 넘으며 나날이 일취월장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은 필드라운딩 90타를 밑돌며 필드와 스크린에서 경력 3~5년 차 동료들을 '농락'하기에 이르렀다. 골프를 아는 사람들은 김 씨가 단기간에 이런 성적을 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사실 김 씨의 골프 실력이 단시간에 늘 수 있었던 것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입문 며칠 만에 겁도 없이 지인들과 라운딩을 간 김 씨는 그날 필드 에티켓을 몰라 동료에게 여러 차례 지적을 당했다. 더욱이 필드를 벗어난 공을 찾지 못해 홀마다 경기의 흐름을 끊어 놓았다. 보다 못한 캐디에게조차 짜증 섞인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한마디로 골프라는 스포츠를 만만히 보다 겪어서는 안 될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고만 셈이다. 김 씨는 자존심이 상한 건 둘째치고 동료에게 민폐 아닌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부터 필드의 환상을 접고 연습장에서 골프공에 레이저를 쏘며 연습에 매진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의 골프 입문기는 이제 우여곡절이 끝난 듯 보이지만 그는 아직 자신이 '초보 중의 왕초보'라며 별일이 없는 한 저렴한 지하 연습장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골프 덕분에 지금은 체중이 5㎏이나 줄고 술도 훨씬 적게 마시게 되었다는 김 씨. 내년에는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봄을 기다리는 그에게 올겨울은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길게 느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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