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세상에는 정말이지 무언가에 미쳐야(Holic), 정신이 미치지(Crazy)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이나 가정사에 스트레스도 심할 뿐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받는 황당한 일들도 예전보다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인맥으로 인한 피로도도 심한 편이다. 그렇기에 무언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시간을 잊는 것은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2015년 '홀릭'의 세계로 빠진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연극을 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찾은 주부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독서를 통해 삶의 혜안을 얻는 공무원이다.
◆40대 후반의 나의 무대 위에서 땀 흘리며 연극으로 나를 찾아요…주부 연극배우 이주연 씨
"올 한 해 연극을 하면서 많은 기쁨을 얻었습니다. 올 연말에는 뮤지컬 '미스코리아'(17∼20일)를 하면서 더더욱 바쁜 한 해를 보냈습니다. 추석 이후부터 연습을 시작해 2개월 동안 연극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무대에 서면, 모든 걸 잊고 삶의 큰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주부 이주연(극단 수성아트피아 부대표) 씨는 40대 후반에 연극 투혼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주 뮤지컬 '미스코리아' 공연 3일째 날에는 혼수상태에 이를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지만, 공연 직전에 간신히 몸을 추슬러 무대에 설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역할(주인공 '미진이' 어머니 역)을 잘 소화했다.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연기가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이 씨는 연극을 좋아하고, 무대를 사랑하는 천상 배우의 DNA를 갖고 있다.
"4년 전, 수성아트피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뮤지컬 아카데미' 프로그램 중 '가족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딸과 함께 '엄마들의 수다'라는 뮤지컬에 참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올 연말에는 큰 무대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인생 후반부에 만난 연극은 어느덧 내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이 씨는 올 연말 공연을 끝내며, 이런 인생 철학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지금은 또다시 멈춰서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 끝에 어느 날, 문득 그 답 대신에 이런 영상이 내 눈앞에 펼쳐져 보였습니다. 얇은 하얀색 면 이불이 햇볕에 눈이 부시도록 뽀드득뽀드득 말라져 나부끼는 모습. 어느 순간부터인가 세상을 살면서 눅눅해져 버린 자아를 자신의 어딘가에 눌러두며 남들 앞에서 괜찮은 척하고 살았다면, 연극을 하게 되면서 그 자아를 꺼내서 하얗게 빨고 햇볕에 말려 뽀송뽀송해지는 느낌입니다."
연극의 그에게 삶은 반추하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취미라 하기에는 직업 같은 배우에 대한 고민도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당당히 고개를 들고 그 눈빛으로 대사를 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될 수 없다는 그 명제를 지켜내고자 합니다."
좋은 점도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찾게 된 것. 이 씨는 연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나를 사랑하는 길을 그리고 타인에게 그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깨닫게 해줬습니다. 아무리 제가 작게 느껴지는 날이 있더라도 '서릿발' 같은 자존심이 자신을 지키고, 세상과 합류하게 하는 중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내 인생의 멘토이자 가장 정직한 연인입니다. 연극을 좀 더 깊이 알게 된 올 한 해 정말 기쁨의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모든 게 넘쳐나는 시대, 나를 지키는 건 '사유' , 책 속에서 지혜 얻었죠…독서광이 된 1년 공무원 이화선 씨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고민이 많습니다. 승진, 주요부서 근무 등 성공지향적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공직생활 속에서도 진정한 나 자신을 찾고,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면을 보이고 싶습니다. 그런 고민을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올 한 해, 독서는 내 삶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줬습니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자연스레 손은 책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화선 씨는 예전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올 한 해는 '독서광'이 됐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도 생겼다. 올해 읽었던 책 중에 '베스트 3'를 꼽아달라고 부탁하자. 이 씨는 ▷이중톈의 '백가쟁명' ▷박광수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를 들었다. 먼저 이중톈의 '백가쟁명'은 중국인들의 지혜 결정체인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이 벌인 논쟁을 압축하여 만든 책으로 중국 사상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고, 삶의 지혜를 주는 책이라서 좋았다고 설명했다. 둘째, 박광수의 책에 대해선 "앞만 보고 달려온 2015년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읽었던 책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시와 일러스트로 힐링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개했다. 셋째, 김정운의 책은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만난 책으로, 읽고 난 후에도 많은 고민거리(성공지향적인 삶이 맞느냐, 진정한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등)를 남겨준 기특한 책"이라고 답했다.
이 씨가 올해 특히 독서광이 된 데는 나름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한나 아렌트의 '나 자신과의 조용한 대화'(Silent dialogue between me and myself)를 소개하며 "생각이라는 바람을 표명하는 건 지식의 돛이 아니라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것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오롯이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사유'(思惟)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한병철의 '심리정치'라는 책의 내용도 인용하면 자신의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를 대신 설명했다. "'내가 원하는 것에서 나를 지켜줘!'라는 제니 홀저의 말처럼, 타자에 붙들려 낯설게 되어버린 자아의 소원은 자아를 공격하는 적으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소원과 자유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자아의 욕망과 동시에 스스로 자아를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을 동시에 표현하는 말입니다."
올 한 해 독서는 이 씨에게 큰 위안이 되어 준 절친이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많은 업무로 힘들 때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휴식을 찾았다. "독서하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저만의 사유를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스포츠가 최고!
건전한 취미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강펀치다. 돈과 사람에게 치인 정신적 스트레스도 격렬한 스포츠나 레포츠 취미를 즐기다 보면, 이내 다 잊게 된다. 골치 아프던 일들도 잊게 되는 효과가 있다. 이 때문에 건전한 취미생활 한두 개는 삶에 큰 윤활유이자 비타민이 된다. 2015년 한 해, 새로운 운동에 빠져 즐겁고 보람 있게 산 3인 3색의 취미 이야기를 들어봤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1. 복싱타격 댄스에 빠져 신났던 올 한 해
서울에서 살다가 낯선 대구로 이사를 와 가족도 친구도 없이 외로움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게다가 3세, 6세의 두 아들을 키우며 살림을 살면서, 지치고 무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무료함을 달래려 여러 가지 운동을 해봤지만, 힘들고 몸만 더 고단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생긴 복싱체육관에서 '복타댄스'(복싱타격 춤)라는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길게 운동을 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호기심에 1개월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복타'라는 운동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운동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다른 종목들은 건강 때문에 억지로 했던 운동이었는데 이 '복타'는 재밌고 신났습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신체 전부를 골고루 움직여주는 파워풀한 동작들은 쉴 틈 없이 나를 자극시켜 줬습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동시에 하니, 몸에 예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복싱'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복타'는 나에게 딱 맞는 맞춤형 운동입니다. 거기에 '기능성 코어' 수업에도 참여해,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체계적으로 수업을 받으며 가끔씩 내가 운동선수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2015년 '복타'를 만난 건 나에게 최고의 행운입니다. 내년에도 이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지켜나가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습니다."
주부 정해옥(대구시 달서구 유천동)
#2. 스쿠버다이빙과 함께 행복했던 2015년
"지구의 7할이 바다라고 합니다. 스쿠버다이빙은 그 세상의 70%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올해 해외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정말 행복했습니다. 필리핀 아닐라오'세부'보홀, 사이판, 일본 미야코지마 등 스쿠버다이빙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가족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저의 입장에서는 스쿠버다이빙에 푹 빠져서 정말 행복한 한 해를 보냈습니다. 1년 사이에 스쿠버다이빙의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발전할 것 같습니다.
스킨스쿠버는 또 하나의 우주인 바다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바다도 우주와 같이 무중력이 존재합니다. 또 바다 속에도 산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들판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산을 날아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바다 속에는 다양한 생물과 화려한 산호초 등 땅 위에서는 볼 수 없는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스쿠버다이빙을 좋아하지만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등이 있어 더 즐겁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 바다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또 다른 이유는 '버디시스템' 때문입니다. 서로의 안전을 위하여 꼭 '2인 1조'로 짝을 지어서 다이빙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버디시스템은 마치 전우애와 같은 친밀감이 생겨 물속을 같이 공유한 사람은 쉽게 서로를 신뢰하며 절친한 우정이 생기게 됩니다. 오히려 초보자들은 경력자들에게 극진한 보호를 받을 만큼 물속에서 '버디'(Buddy, 친구)가 함께 있어 든든합니다.
"올 한 해 이런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스쿠버다이빙에 빠져 살 것 같습니다."
자영업자(커피숍 운영) 이창기 씨
#3. 야구선수의 꿈을 사회인 야구로 푼 을미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선수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선수급 실력에는 미치지 못해 결국 선수의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둬야 했습니다. 나이가 50세가 넘도록 마음속 꿈은 한편에 접어뒀는데, 올해 직장인 사회인야구를 하게 되면서, 못다 한 꿈의 한을 풀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 사회인야구단(매일뉴스페이퍼스)에 입단하여, 팀원들과 함께 땀 흘리고 열심히 달렸던 시간이 꿈만 같습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야구를 하게 된 것도 기쁘지만 따뜻한 격려와 배려 속에 팀워크가 좋은 팀에서 기분 좋게 야구를 즐길 수 있어 더 즐거웠습니다. 늦깎이 초보 야구 동호인인 만큼 부담도 컸습니다. 그래서 첫 경기 전에 스크린야구를 통해 타격 실력을 연마하는 등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올 한 해의 성적은 초라하기만 합니다. 타율이 1할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빨리 달리지 못해 내야 안타성 타구에도 1루에서 아웃되는 창피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수비도 매끄럽지 못해, 공을 놓쳐서 뒤로 알을 까기도 하는 등 저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마음만은 늘 즐겁고 신났습니다.
"올 한 해,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도 야구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제 내년에는 사회인 야구 2년 차인 만큼, 동계훈련을 열심히 해서 2016 시즌에는 팀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약합니다.
오상국 대구시립교향악단 사무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