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교과서가 들려준 행복 이야기

며칠 전 송년 모임을 가기 위해 내린 지하철역에서 캐럴이 잔잔히 흐르는 뜻밖의 전시회를 접하게 되었다. 수많은 복주머니로 가득 메운 '행복 담은 복주머니'라는 대형 작품이 발을 멈추게 하였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앙증한 모양의 초들이 '행복한 초'라는 제목으로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을 주제로 창작을 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이처럼 소망하는 행복은 어디서 올까?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국어 교과서에 '행복'이란 단원이 실려 있었다. 오늘따라 그 줄거리가 살포시 떠오른다. 하느님께서 인간 세상에 행복을 나누어 주기로 하여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를 의논하였다. 이 일을 맡은 행복 천사는 '불행'으로 가장하여 거지꼴로 인간 세상에 내려와 맨 먼저 고을 원님을 찾았다. 앞을 가로막는 문지기에게 행복 천사는 "저는 '불행'이니 도와주세요"라고 간청하였다. 사실을 고하자, 원님은 냉큼 쫓아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으로, 부잣집 양반댁을 찾았다. 대문을 지키던 하인이 '불행'이란 거지가 왔다고 전하자, 여기서도 사정없이 내쫓겼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농부네 오막살이.농부의 아내는 아기를 업고 일을 하다 말고 '불행'에게 보리밥에 나물반찬을 정성껏 차려 대접한 후, 쉬어가게 하였다. 결국 천사는 농부네 가족에게 행복을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그 당시는 행복이 뭔지 알지를 못했다. '행복은 착한 사람이 받는구나' 정도로밖에.

부탄(Bhutan)은 행복지수가 세계 1위인 나라다. 히말라야 산맥지대의 척박한 환경에 국민소득도 낮다. 부탄은 겨울에 첫눈이 오는 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사원에는 생화 대신 조화를 꽂을 만큼 생명을 아낀다. 부탄 국민이 행복한 이유는 감성을 잃지 않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순수함 덕분이다.

어릴 적 교과서가 들려주었던 행복과 부탄 국민의 행복은 결코 '물질의 풍요'가 아니다. 행복은 '배려'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농부의 아내는 살림이 어려운데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행복을 받게 되었으며, 행복을 나누어준 천사나, 행복을 받은 농부네나 서로 행복할 것이다. 이 행복의 '대류작용'이 번져 가면 우리 모두 따뜻한 연말연시를 보낼 듯하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겨울 산을 찾아본 적 있을 것이다. 관리인이 없는 산장에는 땔감이 소복이 쌓여 있다. 하룻밤을 묵고 가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쓴 만큼 땔감을 반드시 마련해 놓고 떠난다. 뒤에 오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흘러 마지막 글을 올린다. 설익은 글을 곱게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귀한 지면을 빌려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무지갯빛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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