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달력과 권력

조지훈 시인은 '원단 유감-캘린더의 첫 장을 바라보며'란 글에서 달력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피력한 적이 있다.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정월이 달라진 게 그 좋은 실례이다. 하(夏)나라는 지금의 음력 정월인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삼았지만, 은(殷)나라와 주(周)나라는 섣달과 동짓달인 축월(丑月)과 자월(子月)을 각각 한 해의 시작으로 잡았던 것이다.

서양 역법의 변천사도 정치 및 종교와 불가분의 관련성을 지닌다. 유럽에서 1천500년 이상 사용한 율리우스력은 로마의 정치적 실력자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 역법을 수정 보완해 만든 것이다. 카이사르의 정치적 양자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이름(율리우스'July)을 7월로, 자신의 존칭인 아우구스투스(August)를 8월로 삼았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교회가 소집한 공의회에서도 달력은 주요 안건 중 하나였다. 교회가 율리우스력을 개정해서 그레고리력을 만들었는데, 그 와중에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열흘이 로마의 역사에서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레고리력 이전에 사용하던 율리우스력은 현대의 달력보다 1년에 11분 14초가 더 길었는데, 그것이 누적되면서 16세기에 들어서는 달력과 천문학적인 춘분 사이에 열흘이라는 차이가 생기면서 비롯된 일이다. 결국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특단의 조치를 통해 문제의 열흘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자체의 달력이 없이 중국의 연호를 쓰던 우리나라에서도 구한말 한때 수십 일의 날짜가 사라지는 공백이 발생했다. 일제의 압력으로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인 1896년 1월 1일로 고치면서 음력 11월 18일 이후부터 연말까지의 날들이 공중에 떠버린 것이다. 달력의 역사 속에는 이렇듯 권력과 과학의 충돌 그리고 인습과 혁신의 갈등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신을 모델로 등장시킨 2016년 달력을 발행해 눈길을 끈다.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하는 일년'이라는 제목의 달력에서 푸틴은 근육질의 가슴을 드러낸 채 낚시를 하거나 군복을 입고 운동하는 사진뿐만 아니라, 개를 안고 있거나 꽃 냄새를 맡는 등 감성적인 면모도 담았다. 자신을 찬양하는 문구도 덧붙였다. 러시아 대륙을 호령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파격적인 달력 모델 등장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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