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대가야읍을 지난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덕곡면을 거쳐 성주군 수륜면으로 접어들었다. 순례의 길과 성찰의 길 가운데 성찰의 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성찰의 길은 고령 덕곡면을 지나 성주 수륜면과 가야산을 넘어 합천 해인사로 이어진다. 총 길이는 26.1㎞다. 순례의 길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가야산을 넘어야 하는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성주 수륜면은 가야산 대표 대가람인 법수사의 발굴 및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사업이 한창이다.
◆효녀의 아버지를 살린 환암대사
고령현감의 배웅을 받으며 대가야읍을 벗어난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고령군 덕곡면으로 접어들었다.
덕곡면은 고령에서 문화와 전통이 살아 있는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다. 가야산 정기를 받아 맑은 물이 풍부하고,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던 옥미와 딸기 등 품질 좋은 농산물이 풍부해 인심이 넉넉한 고장이다. 덕곡예마을은 마을 주민들이 펜션 등 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은 하루해가 저물어서야 겨우 덕곡면 노리마을에 당도했다.
환암대사는 이 마을에서 어린 효녀 이야기를 들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어린 효녀는 아버지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동냥과 품팔이를 하면서 극진히 모셨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병세가 더욱 악화돼 어린 소녀는 백방으로 약을 구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환암대사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소녀의 집을 찾아갔다.
환암대사는 어린 소녀에게 "노리에서 20리 밖에 있는 푸른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약샘이 있으니, 그 물을 떠다가 아버지에게 드려라"고 일러주었다.
어린 소녀는 "그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는 환암대사의 말을 듣고 바로 약샘 물을 구하기 위해 떠났다. 어린 소녀의 몸으로 산을 두 개나 넘고 겨우 푸른마을에 도착했지만 탈진해 쓰러졌다. 쓰러진 효녀를 발견한 마을 사람이 아버지의 병구완을 위해 약샘을 찾아왔다는 사연을 듣고, 소녀의 효심을 기특하게 여겨 약샘의 물을 구해 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도 해 주었다. 덕분에 효녀는 약샘의 물을 구해 와 아버지를 구완하였다. 효녀의 효심에 대한 칭찬은 약샘의 효능과 함께 30리 밖까지 퍼져 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
노리마을을 지나 올라가면 덕곡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덕곡저수지 윗마을이 '서유재'다.
서유재 마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절경이다. 서유재의 옛날 이름은 '명곡동'이었다. 그러나 이 마을은 해마다 사람이 죽어가고 전염병이 도는 등 크고 작은 불상사가 일어나 마을 주민들이 큰 걱정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마침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의 총책임자이면서 고승인 환암대사를 찾아갔다.
환암대사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아침 명곡동 마을을 찾았다. 마을을 살펴본 환암대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마을 앞산이 코끼리 코처럼 생겼고, 이 동네가 그 위에 얹혀 있는 꼴이라 코끼리 코가 움직일 때마다 불상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마을 이름을 명곡동에서 서유재(鼠留在)로 바꾸면 괜찮을 것이다"고 했다.
이유인즉, 쥐가 코끼리 코 안을 지나다니면서 코를 누를 수 있으니 '서유재'라고 한다면 불상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마을 이름을 '서유재'라고 부르자 거짓말처럼 질병이 사라지고 다시는 재앙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을을 '서유재'라고 부르며, 마을 앞산을 '상비산'이라고 한다.
서유재마을을 지나면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이다.
성주군은 백운리 일대 팔만대장경 이운 경로에 데크를 설치하고, 산책로를 신설하거나 정비하고 있다. 또 중기(中基)마을에는 문화예술체험장과 돌담길 200m 등을 조성 중이다.
또 성주군은 백운리와 가야산 일대에 3대 문화권 선도사업인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백운리에는 마의(麻衣)태자의 동생 범공(梵空)이 머물렀던 법수사(法水寺) 터가 있다. 법수사 터는 지난 6월부터 발굴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환암대사는 가야산을 넘어가기 위해 법수사에 여장을 풀고 쉬기로 했다.
◆가야산을 대표했던 대가람 법수사
가야산 해인사와 더불어 남동쪽에 있던 법수사는 가야산을 대표하는 대가람이었다.
법수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중기마을에 있던 사찰이었다. '중기'는 절터 중앙에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창건 당시에는 금당사(金塘寺)라 했으며, 고려 때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뒤 폐사됐다. 지금도 절터를 중심으로 백운리 골짜기 곳곳에 석탑, 돌기둥, 주춧돌 같은 유물이 퍼져 있다.
법수사는 한때 합천 해인사보다 위세가 더 당당했던 사찰이었다.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이 자그마치 1천 칸이 넘었고, 암자만 100여 개를 헤아렸다고 전한다. 지금은 도은암(道恩庵)과 보현암(普賢庵)'백운암(白雲庵)'일요암(日曜庵) 등 몇 개의 암자가 이름만 전할 뿐이다.
성주읍지(星州邑誌)인 '경산지 불우조'(京山誌 佛宇條)엔 "법수사엔 구금당(九金堂) 팔종각(八鐘閣) 등 무려 1천여 칸이 넘는 건물이 있었다. 사찰에 딸린 암자만도 100개가 넘었다"고 기록돼 있다. 해인사 못지않았던 법수사의 방대한 규모와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물로는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이 유명하다. 절이 폐사된 뒤 인근 용기사(龍起寺)로 옮겼으나 용기사마저 폐사되자, 1897년 범운(梵雲)이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옮겨 해인사의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미륵당에 있던 미륵불상은 1967년 경북대학교로 옮겨졌으며, 진등마을에 있던 목 없는 석불좌상은 대좌와 함께 폐교된 백운분교 자리에 있다고 전해지나, 몇 차례 찾아갔지만 풀이 우거져 찾지를 못했다.
지금 법수사 자리에는 보물 1656호 삼층석탑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당간지주(幢竿支柱), 시식대(施食臺) 등만 겨우 남았다. 당간지주는 요즘 말로 하면 깃발 게양대다. 옛날 절에서는 깃발을 세웠는데 기를 높이 세우기 위해서는 장대가 필요하고, 그 장대를 고정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당간지주다.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법수사지의 거대한 축대로부터 100m가량 떨어진 백운리 중기마을 전방에 위치해 있다. 높이는 3.7m이다. 당간지주의 크기는 그 절의 크기와 위용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금의 법수사 당간지주를 통해 옛날 법수사를 그려볼 수 있다. 작은 제단이 있는 것으로 미뤄 요즘에도 마을 주민들의 기도처가 되고 있는 듯하다.
법수사는 마의태자의 동생 범공이 중이 돼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신라 왕위 계승자인 마의태자는 아버지 경순왕의 고려 투항에 반대하고, 금강산에 들어가 삼베옷을 입은 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며 살았다. 동생 범공은 머리를 깎고 화엄종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금당사에 머물렀다.
범공 스님은 여생을 금당사에서 보냈지만,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시름을 삭여주는 가야산에서 천 년 사직이 스러진 한을 달랬을 스님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범공 스님으로부터 400여 년 후 이숭인(李嵩仁)이 법수사를 드나들며 쓴 시는 망국 태자인 스님의 처지를 비유한 듯 애잔한 정조를 띠고 있다.
가을 바람에 기러기 남쪽으로 날려 보내며,
한 마리 새로 지은 시를 푸른 산속에 보내오.
솔의 학과 바위의 원숭이도 응당 슬피 볼 것이니,
지난해 놀러 온 나그네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고.
◆수륜면 일대 가야문화권 성지로 탄생
가야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대표적인 3대 문화권사업이 '가야국 역사루트 재현과 연계자원 개발사업'이다.
성주군은 수륜면 백운리와 가야산 일대에 대해 2017년까지 122억6천900만원을 들여 가야문화권 성지를 만들고 있다. 이 일대 연면적 4만9천595㎡에 대해 3대 문화권 선도사업으로 가야국 역사신화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성주군은 가야산신인 정견모주를 중심으로 가야산과 가야국의 역사'문화'신화'생태자원 등을 주제로 한 신화테마관을 건립하고 있다. 또 하늘 신 이비가가 꽃 구름을 타고 내려와 산신 정견모주와 감응했다는 상아덤 바위 신화를 테마로 한 야외갤러리인 상아덤마당과 가야국 시조의 탄생을 묘사하고 체험할 수 있는 탄생마당도 조성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가야산 일대 생태탐방지구에서는 건국신화를 테마로 한 생태탐방로, 자연생태관찰로 등을 설치'운용할 계획이다. 또 지역 자생 수종과 야생화식물원을 연계한 정견모주의 길, 쉼터, 데크, 정자, 생태탐방로 등 편의시설을 갖춰 가야역사공원지구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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