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프로야구 관람문화 바꿔보자] <상>야구장, 새로운 문화가 필요하다

라이온즈파크, 공원처럼 즐기다 집으로…

지난해 3월 28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삼성-SK 개막전에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이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지난해 3월 28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2015 프로야구 삼성-SK 개막전에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이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올해 삼성 라이온즈는 사상 첫 정규시즌 6연패와 통산 8번째 한국시리즈 우승(1985년 통합 우승 제외)에 도전한다. 특히 야구단의 대주주가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바뀐 데다 새로운 홈구장에서의 첫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가히 '제2의 창단'으로 부를 만하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의 개장은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에게만 의미가 남다른 것은 아니다. 지역민으로서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줄 좋은 계기다. 메이저리그가 부럽지 않은 최신 구장에서 수준 높은 스포츠 관람문화를 꽃피울 새 아침이 밝았다.

◆새 랜드마크에서 새 문화를

삼성은 KBO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평가받는다. 롯데와 더불어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팀 이름을 지켜온 두 팀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시리즈에 가장 많이 진출(17차례)한 팀이다. 지난해 '도박 파문' 여파로 한국시리즈 패권을 아쉽게 넘겨줬지만 정규시즌 5년 연속 제패도 당분간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이다.

하지만 빼어난 성적에 비해 야구장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1948년에 지어진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북구 고성동)은 수차례 보수공사에도 전국에서 가장 낙후한 구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선수들이 사용하는 라커룸(locker room)조차 여름철에는 악취를 풍길 정도였다.

비단 스포츠 인프라만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야구에 대한 대구경북민의 '극성'도 프로야구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6년 10월 22일 벌어진 '해태 구단 버스 방화'이다. 이 사건 탓에 대구 야구팬들의 이미지는 과격 행동을 일삼는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훌리건'(hooligan)에 아직도 비유되곤 한다.

물론, 팬들의 관람 문화가 성숙하면서 이 같은 일탈은 거의 사라졌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34년이 흐르면서 과도한 승부 집착과 지역연고제로 말미암은 지역갈등 구도 역시 완화됐다. 대구시 체육시설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여성'가족 단위 관람객이 크게 늘면서 과격한 행동은 많이 줄었다"면서도 "대구의 랜드마크인 새 야구장을 진정한 명물로 만들려면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떠난 뒷자리를 아름답게

그래도 개선해야 할 부문은 여전히 많다. 가장 시급한 것은 쓰레기를 손수 치우는 문화다. "전국에서 뒷정리에 가장 무심한 사람들이 대구 구장의 야구팬"이란 게 야구장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프로야구가 열린 대구시민야구장에서는 매일 5~6t가량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한국시리즈처럼 만원(1만 명 수용)을 이룰 때는 8t 이상으로 늘어나곤 했다. 시민 의식이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최대 2만9천 명을 수용하는 새 구장에서는 '쓰레기와의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대구시 체육시설관리사무소 측은 "다른 구장은 인부들이 집게만 들고도 청소할 수 있을 정도지만 대구 구장은 유난히 음식 쓰레기가 많아 골머리를 앓았다"며 "규모가 훨씬 큰 새 구장은 물청소에도 며칠씩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대대적인 시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구장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진 유리창'을 없애야 한다. 사소한 무질서를 초기 단계에 차단하지 않으면 큰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골목길 한쪽 구석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변으로 더 많은 쓰레기가 쌓이게 되는 이치다.

그런 면에서 롯데의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은 본보기가 될 만하다. 관람객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자는 취지로 2005년부터 구단 측이 나눠준 주황색 비닐봉지가 기대 이상의 훌륭한 응원문화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다. 롯데 구단의 오동락 홍보담당은 "팬들이 비닐봉지를 응원도구로 쓰면서 '봉다리 응원'은 부산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며 "문제점을 내버려두지 않고, 개선하려는 팬과 구단의 공동 노력이 독특한 문화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나의 팀, 나의 구장, 나의 좌석'

야구장을 직접 가야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편안한 거실 소파에서, 때로는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을 들이켜며 TV 중계로 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팬들이 야구장을 직접 찾는 것은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생동감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내 각 구단은 아직 연간 회원이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관람객 대부분은 생활 속의 작은 이벤트로 이따금 야구장을 찾곤 한다. 연간 회원제가 뿌리내린 미국이나 일본과 차이가 있다. 성숙한 야구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연간 회원이 늘어야 한다는 게 야구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국내 구단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자주 찾는 일본 히로시마의 경우 지난해 8천300석의 연간 회원권이 연초에 모두 매진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8년 만에 친정 팀으로 복귀한 베테랑 투수, 구로다 히로키의 인기가 영향을 미쳤지만 야구가 일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방증이다.

아직 본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하지는 않았으나 삼성은 올해 400여 석의 연간 회원권(블루 패밀리)을 파는 데 그치고 있다. 30개에 이르는 '스위트박스'까지 포함하면 연간 회원권 판매량이 900석으로 늘어나지만 목표인 2천 석에는 많이 모자란다. 3만3천 명을 수용하는 히로시마 구단의 홈구장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이 전체 좌석의 25% 이상을 연간 회원으로 채우는 점을 참작하면 가야 할 길이 멀다. 삼성 측은 "해외 구장에서는 연간 관람권으로 판매되는 프리미엄 좌석뿐 아니라 일반석도 팬들이 더럽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나의 팀, 나의 구장, 나의 좌석이라는 인식이 강한 덕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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