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 때문에 한창 에너지 넘치는 아이의 활동을 제지해야 하고, 격의 없는 이웃관계로 때로는 사생활을 허락받지 못하는 아파트 생활을 접고 일반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나에게 개똥철학이 생겼다.
세탁한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면 멀리 보이는 눈 내린 팔공산의 희끗희끗한 산봉우리가 팔순의 우리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고 가까이 보이는 아파트들은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속 건너편 부자 동네 같은 먼 동네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빨랫줄에 내 눈이 머물렀다. 올라갈 때마다 빨랫줄을 한참 응시하게 되었다. 빨랫줄 4개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매어져 있다. 어떤 날은 거미가 줄을 치기도 하고 잠자리나 벌이 잠깐 앉아있기도 한다. 비가 온 후에는 빗방울이 이슬처럼 맺혀 있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흔들거리기도 하며 그 아래 빨래들의 그림자가 일렁이기도 한다. 햇볕이 가득한 날은 얌전히 일광욕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란히 걸린 빨랫줄의 간격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니라 여유로움으로 느껴지고 전깃줄같이 그 안에 몇만 볼트의 열정은 없지만 사이를 두고 바람과 햇볕을 자유로이 드나들게 하며 빨래를 햇볕 냄새 바람 냄새 나도록 빳빳하게 말려준다.
세탁기를 한 바퀴 돌아온 가족의 빨래들이 한 식탁에 앉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가족을 대신해 빨랫줄에 나란히 걸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바람과 햇볕에 일상의 피로를 말리고 있다는 생각에 미소 짓기도 한다.
또한 빨랫줄을 보며 소통을 배운다. 부부와 이웃. 친구, 직장동료 관계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고 간섭하며 감정까지 내 맘 같이 만들려고 했던 나의 불통을 깨닫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생 아들과 중학생 딸을 엄마로서 아이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와 잔소리로 간섭하고, 관심이라는 명목으로 자식의 감정까지 휘두르려고 한 건 아니었는지 반성해 본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믿어주며 엄마가 정말 필요할 때 대화하고 격려하고 안아주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올바른 소통임을 이제야 알 듯하다.
예술에서도 그 소통의 간격을 찾을 수 있다. 오선지의 다섯 개 줄 사이에서 춤추는 음표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고 현악기와 피아노 줄 사이의 간격에서 나오는 소리 또한 큰 울림을 준다. 미술에서도 여백의 미가 예술성의 완성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개똥철학인 빨랫줄 철학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도록 상대방의 감정과 개성,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소통은 꽉꽉 채워서 간격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사이를 두고 품을 열어 대화와 감정, 믿음을 오가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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