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맥스야. 우리는 너를 사랑하는 동시에 너와 어린이들 모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단다. 네가 우리에게 사랑과 희망과 기쁨을 주듯이 너의 삶도 사랑과 희망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빈다. 네가 이 세상에 무엇을 가져올지 무척 궁금하구나.'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딸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다. 저커버그 부부는 지난달 1일 페이스북에 딸 맥스(Max)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딸에게 쓴 장문의 편지를 함께 공개했다. 이 편지에서 저커버그는 '무거운 책임'을 실천하고자, '자신의 딸뿐 아니라 다음 세대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자, 그가 가진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내놓겠다고 했다. 450억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52조원이다.
이 편지가 주는 감동은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 잔잔히 이어지고 있다. 그가 약속한 천문학적 기부금은 수백만, 수천만 명에 이르는 미래세대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대신해 저커버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는 찬사가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저커버그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그가 이처럼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궁금해졌다. 이제 겨우 서른한 살의 젊은이가 자신의 성공과 가족의 안락을 넘어 '더 나은 지구'를 꿈꿀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답은 '인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커버그는 단순한 컴퓨터광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 로마신화 등 고전 읽기가 취미였다고 한다. 과학과 역사를 아우르고, 신과 인간의 존재에 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들을 통해 누구보다 진지하게 인간을 고민했을 것이다. 하버드 대학 입학 이후에는 심리학을 복수전공해 인간관계에 파고들었다. 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계기도 인간관계 확장이라는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됐다고 평가받는다.
반면 우리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자식을 낳으면 기부 대신 '주식'을 물려주는 한국 대기업의 현실은 결국 '인간' 교육의 실종에서 비롯됐다. 우리 교육에는 인간이 없다. 오로지 입시뿐이다. 좋은 인간이 아니라 좋은 대학, 좋은 기업이 교육의 목표로 전락한 듯하다. '기업 인재 양성소'나 다름없는 교육기관이 어떻게 국가와 세계, 인류의 미래를 이끄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을까. 결국 우리 교육에 가장 필요한 건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왜 필요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 대학을 대표하는 서울대의 '선(善)한 인재' 교육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2014년 취임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따뜻한 가슴을 가진 선한 인재 육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성 총장은 지난해 8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똑똑하고 차가운 지성에다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태야 공동체를 이끄는 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선한 인재론'을 소개했다.
성 총장 취임 이후 서울대는 다양한 봉사활동과 인간을 주제로 한 강좌 등을 통해 선한 인재를 키우고 있다. 서울대가 위치한 관악구 야학, 농촌 및 해외 오지 봉사 등 100여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을 도입했다. 지난해 9월에는 '인간학개론'이라는 교양 강좌를 개설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주제로 인문'사회과학 교수 3명이 팀을 꾸려 수업을 진행했다. 올해에는 '무엇이 참 행복인가'를 바탕으로 한 '행복학개론',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생명학개론' 등의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다.
이즈음에서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경구(警句)를 되씹어본다. 국회의원이기 전에, 기업인이기 전에, 언론인이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또 다른 인간, 한국판 저커버그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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