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우리가 한번 바보답게 되든 안 되든 들이박아나 보고 죽자."(전태일, '전태일 평전', 조영래)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김수환 추기경)
대구경북은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바보' 두 사람을 낳았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너무 일찍 생을 마치며 노동운동의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된 전태일(1946~1970) 노동운동가와 감사와 사랑의 참 정신을 남기고 선종한 김수환(1922~2009) 추기경이다. 스스로 바보로 자처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날이 갈수록 더욱 빛이 나기에 바보 아닌 위인(偉人)임이 분명하다. 활동 무대는 달랐지만 남긴 자취는 긴 생명력을 가졌다.
전태일 노동운동가는 가난으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일대서 노동자가 됐다. 3만 명 동료는 단지 기계였다. 그래서 인간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1969년 6월 '바보회'를 만든 까닭이다. 그러나 세상은 귀를 닫았다. 절망과 좌절, 관(官)의 배신뿐이었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절규와 함께 분신(焚身)으로 생을 마쳤다. 그러나 '내 죽음 헛되이 말라'는 외침처럼 그는 노동자의 대변자로 되살아났다.
김수환 추기경은 평생을 겸손과 헌신적인 종교인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온 국민에게 사랑과 감사의 정신을 남겼다. 2001년 그린 자화상 아래 남긴 '바보야'라는 친필 글씨는 스스로 낮추고 겸손하고자 한 순수한 삶을 웅변한다. 추기경의 바보 정신은 불교의 하심(下心)과도 통한다. 뒷사람들이 '바보' 모임과 행사로 추모함은 추기경의 바보 같은 삶을 닮고 싶어서이고 훌륭한 사표가 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정부의 경제 위기 주장을 반박하며 "국민이 바보냐, 병신이냐"며 우리 국민의 현명함을 강조했다. 그렇다. 우리는 결코 바보도, 병신도 아니다. 하지만 바보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바보 전태일 김수환'에서 알았다. 새해 병신년에는 남을 위하고 자신을 낮추는 그런 바보가 돼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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