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표현된 인격이라고 했다. 그래서 욕은 안 해야 할 말이다. 특히나 절대로 입에 담아서 안 될 욕이 있다. 이를테면 '화냥년' 같은 욕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욕설에는 병자호란의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다. 병자호란 때 60만 명의 조선인이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이 중 50만 명이 여성이었다.
청나라 군대는 성 노예나 노비로 삼기 위해 여성들을 끌고 갔는데 여성들의 지체와 신분에 따라 값을 매겨놓고 가족들이 돈을 지불하면 돌려보냈다.
이를 속가(贖價)라고 하는데 보통 200냥 안팎이었지만 최고 1천500냥에 이르기도 했다. 당시 평민들로서는 엄두도 못 낼 거금이었다. 나중에는 속가를 노린 청군의 납치가 횡행했고 이를 중개하는 브로커들도 설쳐댔는데 상당수가 조선 사람들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여인네들을 조선 사회는 위무하기는커녕 '환향녀'(還鄕女'고향에 돌아온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며 박대했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죄로 이국땅에서 모진 고초를 겪은 환향녀들은 몸을 더럽혀 조상에게 죄를 지었다는 모욕까지 감내해야 했다. 환향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구걸과 매춘으로 기구한 삶을 이어갔다. 일부 양반들은 환향녀에 대한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상소까지 올렸다. 조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양반들은 후사를 이어야 한다는 핑계로 첩을 들였다.
청나라로 끌려가 정절을 잃은 여인네가 낳은 자식들도 멸시를 받았다. 조선 사회는 그들을 '호로자'(胡虜子)라고 부르며 천대했다. 세월이 흘러 환향녀는 '바람을 피운 여자'를 뜻하는 '화냥년', 호로자는 '후레자식' '호로새끼' 같은 욕설로 변해 우리 사회에서 '함부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세계 스포츠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우리네 아줌마들이 억척스러운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남자들이 못나서, 정치 지도자들이 무능해서 겪은 고초와 배신감을 무의식 저 깊은 곳에 한(恨)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땅의 여성들이 강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의 협상 결과를 보면서 환향녀의 비극적 역사를 떠올린다. 협상 무효 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대승적으로 이해해 달라"며 진화에 나서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할 협상인 줄 알았을 법도 한데 이를 서두른 정부에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여자부터 고초를 겪는다는데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낯을 들 수 없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