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출간돼 반향을 일으킨 것이 14년 전이다. 주류 경제학파와 서구의 롤 모델로 제시됐던 경제성장의 오류를 지적한 슈마허 교수의 논리는 잔잔하게 우리의 현대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슈마허 교수는 '과학은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 혹은 마음속 깊은 곳의 절망감을 치유하는 역할 등에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그는 진화론, 적자생존, 계급투쟁, 무의식, 상대주의, 실증주의 등 19세기에 만들어져 21세기에도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들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슈마허 교수의 지적은 아직도 유용하다. 그러나 인문학은 어느 순간 유행처럼 반짝하고 지나치면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듯해 아쉽다.

슈마허 교수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출간한 1974년 당시의 우리나라는 성장 위주의 경제 법칙에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 탱크처럼 전진하던 시점이기도 했다. 아마 당시 이 책이 출간됐다면 여지없이 출판사나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이 체포돼 옥고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이후 진보 진영의 많은 이들이 1990년대에 들어서 '작은'이라는 수사어를 알게 모르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은 학교, 작은 교회, 작은 치과, 작은 음악회 등. 그러나 아쉽게도 이 같은 수사를 사용했던 공간들도 수십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라지거나 또 다른 변신을 꾀해 만나보기 힘들어졌다. 굳이 슈마허 교수의 저서를 해독해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류 경제와 환경이 판을 치던 시절에 '작은'을 표방한 공간과 단체들은 대다수 인문적인 삶의 형태를 내면화하기 위한 활동과 관심을 이어갔다. 어쩌면 유일하게, 현재까지 버티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한 '감나무골 작은 학교'가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대다수가 편부나 편모 또는 편조모 곁에서 물질적 부족함을 안고 자라는 아이들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을 공급하는 큰 버팀목 같은 역할을 현재도 이어가고 있다. 대구 북구 대현동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은 센터 관계자와 수많은 대학생들, 그리고 이곳에 관심을 가진 봉사자들이 꾸려나가고 있는 지역공동체 공간이다.

갖가지 삶의 형태에 대한 인문학적 고민을 아이들 그리고 부모들이 함께 수십 년 동안 해오고 있기에 소중한 곳이다. 커다란 주제를 다루거나 유명세를 치르는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켜보는 필자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슈마허 교수의 철학 중 '지역 공간에서의 인문학적인 접근'을 실행하는 작은 움직임에 손발 모두를 동원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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