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책의 새論새評] 국회가 없어졌다

전원책 칼럼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1955년 울산 출생.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제2회(1977년) 백만원고료 한국문학신인상. 전 경희대 법대 겸임교수. 전 자유경제원 원장

대도시 분구·농촌 통폐합하면 될 것을

여야 서로 양보 안해 선거구 획정 결렬

野 "선거권 18세로 낮추면 여당에 협조"

박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대책 세워야

지금 국회는 없다. 어느 헌법학자도 어느 언론도 지적하지 않는 문제다. 그런데 적어도 내 법률지식으로는 '선거구가 사라진' 1월 1일 0시부터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거나, 비례대표만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19대 국회의원들은 이미 의원이 아니다. 국회의장도 공석이며 원 구성은 이제 무효다. 19대 국회는 작년 말로 그 수명을 다한 것이다.

장담하건대 이 법리해석대로라면 온 국민이 만세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나온 인권선언은 16조에서 '권력의 분립이 확정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아니하다'고 하여 권력분립을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본다. 그 권력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가 신기루처럼 증발했는데 국민이 즐겁다면, 그 국회는 우리가 뽑은 선량들이 공공의 이익을 논하는 의회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소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은 아직도 버젓이 배지를 달고 있고 의장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가?

공직선거법은 21조에서 국회의원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하여 299인으로 하고, 20조에서 비례대표는 전국단위 선거구를, 지역구 의원은 당해 의원의 선거구를 단위로 하여 선거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현행 선거구가 헌법재판소에서 재작년 10월 말 그간 논란이 돼 온 인구 편차 문제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위헌 결정과 다름없는 재판관 6대 3의 압도적 결정이었다. 헌재는 선거구 간의 인구 편차 3대 1이 지나치게 커 '표의 등가성'을 해치고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평등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보았다. 헌재가 당장 위헌 결정을 하지 않은 것은, 입법 공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말까지 인구 편차 2대 1로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하도록 넉넉한 시간을 주었던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도시화 현상으로 농촌 인구가 급격히 줄고 수도권과 충청권 인구가 늘면서 벌어진 일이다. 선관위에 따르면 헌재가 제시한 2대 1 기준으로 할 때 246개 선거구 중 37개는 인구상한선을 초과하고 25개는 인구하한선에 미달돼 총 62곳 선거구의 조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농촌은 통폐합으로 선거구를 줄이고, 대도시는 분구로 선거구를 늘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이 문제를 두고 농촌 출신 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야당이 권역별 비례대표를 하자는 등 떼를 쓰는 건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갑자기 야당은 선거권자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낮추자는 안을 제기했다. 이 안만 받아준다면 선거구 획정안과 여당이 주장하는 쟁점 법안을 일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높은 18세 그룹에게 투표권을 주면 여당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겠다는 유혹이다.

새누리당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엉뚱한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른바 개혁법안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솔깃하기도 하다. 보도를 보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전혀 여지가 없다"고 말한 뒤편으로, 노동개혁 5법과 경제활성화 법안의 일괄처리가 담보되면 야당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야당이 발목이 잡힌 게 아니라 여당이 발목이 잡힌 건 확실해 보인다. 그간 여당은 의총에서 '선(先) 민생법안, 후(後) 선거구 획정안 처리'라는 당론을 정하면서 마치 선거구 획정이 야당에게 주는 선물인 양 호기를 부렸다. 그런데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답답하긴 여야가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개혁법안들은 청와대가 매일처럼 국민에게 호소하는 단골 메뉴가 아닌가? 속이 타들어가는 쪽은 아무래도 문재인 대표가 아니라 김무성 대표 쪽으로 보인다.

어떻든 가장 큰 문제는 의회의 위법 상태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초유의 국가비상사태가 명백하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지위에서 의회가 실종된 사태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설사 편의적 해석으로 선거구만 사라졌지 그 사라진 선거구에서 이미 뽑힌 의원들의 자격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총선 전에 선거구를 획정한다고 치더라도 그런 변칙적인 규칙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그 선거에 승복할 자가 있겠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