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분노 부르는 '여론조사 문자' 무차별 발송

여론조사 이대로 안된다

직장인 김모(45'대구 북구 태전동) 씨는 요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면 화가 치민다.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보내는 각종 여론조사 관련 메시지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주말에 진행되는 여론조사 잘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다. 김 씨는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지 모르겠다"면서 "심지어 경북 경주에 출마하는 예비후보가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대구경북(TK)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여론조사 지지도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선거전 구도가 공약이 실종된 여론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대결 등 후보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구태정치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지도 높이기 위한 여론조사 난무

총선이 다가오면서 예비후보 사이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여론조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지도 조사가 난무해 주민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상대 측 인지도 조사 탓에 손해를 봤다고 하소연을 하는 예비후보도 많다.

새누리당 대구 예비후보 A씨는 "경쟁자 측이 인지도 여론조사를 하면서 내 이름을 빼고 했다"면서 "여론조사 전화를 받았던 주민들이 '안 나오는 거냐' '탈락한 거냐'라는 말을 많이 들어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털어놨다.

자신도 모르게 인지도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새누리당 대구 예비후보 B씨의 경우 출마지역이 아닌 다른 선거구에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이에 따라 당초 출마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선거구를 바꾸려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직함에 '박근혜 마케팅'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여론조사를 하면서 자신의 직함을 '박근혜정부의 ○○○'으로 하기도 한다. 예비후보들은 대통령과 관련된 직함을 사용할 경우 여론조사 지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똑같은 인지도 조사를 누가 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져 시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같은 선거구에서 서로 자신의 인지도가 높게 나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서면으로 신고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과를 공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부 예비후보는 여론조사 결과를 지인들에게 알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사활

지난해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하고 올해 초 각 언론사들이 여론조사를 경쟁적으로 시작하면서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여론조사 인지도 높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 대구경북 예비후보 선거캠프는 주요 매체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론조사가 실시되는 날짜를 알아내 지지자들에게 '협조 메시지'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선거캠프는 '주말에 진행되는 여론조사 잘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집으로 걸려오는 유선전화 여론조사에 무조건 주변 분들께서 많이 응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주 예비후보가 대구시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선거캠프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 결과를 문자메시지나 SNS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알려 지지도를 올리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여론조사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주요 매체 여론조사 결과가 공천의 중요한 잣대처럼 평가되기 때문이다.

◆ARS 문제 부각

자동응답(ARS) 여론조사에 대한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집 전화의 경우 없어지는 추세인 데다 통화가 되더라도 대부분 응답자가 높은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휴대전화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에 의해 명의자의 거주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전화면접이 아닌 ARS의 경우 연령과 성별까지 조작할 수 있다. 20~30세 연령대의 여론조사 응답자에 가중치가 부여되는 점에 착안해 나이를 속이는 '허위 응답'도 논란이 되고 있다. 유선전화 여론조사의 경우 착신전환이 가능해 여론조작 의혹도 나온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12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총선 경선의 경우 휴대전화 가입자의 개인정보와 매칭이 되는 안심번호 제공을 법제화한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경우 안심번호제 법제화에 동의해 놓고도 도입 여부를 놓고 연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양명모 대구 북갑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현재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자동응답(ARS)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낮다"면서 "정확한 여론조사를 위해서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재 예비후보들이 남들과 비교되는 공약을 개발하기보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목을 매고 있다"면서 "여론조사가 총선 공천자를 결정하는 경선에 활용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여론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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