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할매와 할배가 아들 집에 가려고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리라는 아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할배가 말했다. "기사 양반! 개죽은 역으로 갑시다" 택시 기사가 못 알아듣자, 할매가 나섰다. "아이고 이런 영감쟁이! 서울에서 사투리를 쓰면 우야노. 기사 양반 개잡은 역으로 갑시다"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택시 기사는 보신탕집 앞에 차를 세웠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얼음공주의 해빙(解氷)'이라는 이미지 변신으로 화제가 된 '썰렁 유머'도 할매 버전이다. "할머니! 안녕하세요"를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할맨겨", "할머니, 비켜주세요"는 "할매 쫌"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경상도에서는 이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할매 할배'라고 부른다. 특히 경북 북부지방에서 어머니를 '어매' 아버지를 '아배'라고 부르며, 아주머니를 '아지매', 아저씨를 '아재'라고 부르는 것도 그 연장 선상이다.
수도권에서 사용하는 말이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표준말이 된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같은 뜻의 사투리인 '할매 할배'와는 그 정감이 판이하다. 황혼의 배낭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던 '꽃보다 할배'란 프로그램이 할아버지가 아닌 '할배'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그 호칭의 맛과 멋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대가족이 어우러져 살던 시절 '손자 손녀'에게 '할매 할배'는 각별한 존재였다. 할매의 치마폭이나 할배의 무릎 위는 어매의 꾸지람이나 아배의 회초리로부터 자유로운 해방 공간이었으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세대 간 소통의 공간이었다. 풍상을 겪으며 평생 체득한 인생의 경험철학과 교훈을 조근조근 풀어내면서 손자 손녀의 인격 형성과 정서적인 성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교육현장이기도 했다.
경북도가 '할매할배의 날'을 확산시키기 위해 최근 15개 광역시'도에 사는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인식조사 결과 '할매'와 '할배'라는 단어를 아는 사람이 뜻밖에도 93%를 넘었다. 평소 '할매 할배' 말을 쓴다고 응답한 비율이 50%를 넘은 곳 역시 영남권이었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할매할배의 날' 생활실천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해 세대 간 소통과 공감 향상으로 세상이 그만큼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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