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법안 처리만 바라는 청와대
눈치 보느라 권한·능력 없는 식물 여당
당내 갈등으로 협상 못 나서는 야당
믿을 구석은 정의화 국회의장의 역량뿐
총선을 불과 90여 일 앞두고 있지만 국회는 선거구 획정도 못하고 있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이미 시작됐건만 선거구가 결정되지 않은 지역이 허다하니 선거를 제때에 치를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며칠 후면 공직자나 언론인 등이 총선에 출마하기 전에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90일 시한마저 지나게 되니 이런 상황에서 공직을 버리고 출마를 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현직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선거구 획정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국회가 선거구 획정도 못하고 있는 책임은 여야 지도부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이른바 개혁법안을 국회가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법안에는 동의할 수 없는 조항이 적지 않게 있어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통과를 요구하는 기업구조개선법안이나 노동개혁법안은 대기업에는 편익을 가져다주겠지만,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을 위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야당으로선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경제 상황 속에서 기업구조개혁을 신속하게 하기 위해선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민감한 부분이 있는 법안이라면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불행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그런 리더십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어렵다면 여당 대표와 원내대표라도 재량권을 갖고 야당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여름 '유승민 사태' 이후 새누리당 지도부에 그런 협상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다. 여당 대표나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하명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은 이제 온 국민이 알고 있다. 이런 지경이니 여당 지도부는 쟁점법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기 위해 그것을 선거구 획정과 묶어서 일괄처리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구 문제가 타결되지 않는 것이 오직 여당 탓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야당 또한 선거구 획정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해야만 하는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의 인구 편차 최대치를 기존의 1대 3에서 1대 2로 내리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구 획정 협상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부합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야당은 선거구 획정 협상 도중에 비례대표제를 명부식으로 한다거나 군소정당에 프리미엄을 주는 최소 의석 보장제를 도입하자는 등 비례대표제 개혁 자체를 협상조건으로 내세웠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꼭 해야 하는 선거구 획정도 농촌지역 의원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는데 비례대표제 개혁도 같이 다루고자 하니 협상이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이 현행 비례대표제도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선거구 획정 시한에 쫓기면서 그와는 성격이 다른 비례대표제 개혁을 의제로 다루자고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현행 비례대표제는 정당투표 결과에 따른 비례의석 배분인데 비해 야당이 처음에 내놓았던 안은 각 정당의 전체 의석을 명부에 의해 득표수에 비례하도록 하자는 것이었으니, 선거제도 전반을 재검토하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다.
이러다 보니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선거구 획정을 하지 못해서 기술적으로는 모든 선거구가 무효가 되는 기막힌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소통과 대화와는 담을 쌓은 청와대는 여야의 사정에는 관심도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 통과만 원하고 있고, 청와대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여당 지도부는 야당과 협상을 할 능력도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한 식물과 같은 상태에 있다. 당내 갈등으로 분당 이야기마저 나오는 야당은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갈등을 빚고 있어서 여당을 상대로 투쟁도 협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니 믿을 구석은 정의화 국회의장뿐이다. 정 의장은 다른 법안의 처리는 뒤로 미루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기준에 부합한 선거구 획정만은 이번 주에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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