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자기 나이를 이야기할 때는 흔히 "68년 잔나비 띱니다" 하는 말들을 듣게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왜 원숭이띠라고 하지 않고 잔나비 띠라고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원래 원숭이라는 말은 영장류를 뜻하는 한자어 '猿猩'(원성)이 변하여 된 말로 추정되는데, 19세기 이후 문헌에 나타난다. ('원숭이'라는 말은 20세기가 되어서야 정착된, 역사가 길지 않은 말이다.) 그 이전에 원숭이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던 우리말은 '납'이다. 16세기의 한자 교재에는 '납'(猿)으로 되어 있고, 영천에는 '납샘'(원숭이가 물을 마셨다는 샘)과 같은 지명이 있는데 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에는 '나비'라는 말이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납'에 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굴'에 접미사 '-이'가 붙어서 '개구리'가 되는 것과 같다.
17세기 이후의 문헌에는 'ᄌᆡᆫ나비'로 쓰이다가 이후에 '잔나비'가 되었다. 'ᄌᆡᆫ'을 '재다'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하면 '재빠른 원숭이'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동북아에는 손오공처럼 작고 빠른 원숭이들이 살았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ᄌᆡᆫ나비'뿐만 아니라 'ᄌᆡᆺ나비'라는 형태도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때 'ᄌᆡᆫ'은 잿빛을 표현하는 말인 'ᄌᆡ'에 관형격을 나타내는 'ㅅ'이 결합된 형태가 자음동화가 되면서 'ᄌᆡᆫ'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 외의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둘만 놓고 보면 어느 것이 타당한지는 조선시대 문학 작품에서 약간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시들에는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잔나비 울고'라는 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 세상과 단절된 상황을 '잔나비와 학이 되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중국 후베이성 파협이라는 곳에는 원숭이가 많이 살아 처량한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는 이야기와 중국 주나라 목왕이 원정을 나섰다가 전군이 전사했는데 군자는 원숭이와 학이 되고, 소인은 벌레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초의 사설시조라 불리는 정철의 '장진주사'에는 죽으면 다 소용없으니까 지금 술 먹고 즐기기를 권하면서 마지막에 ᄒᆞ믈며 우ᄒᆡ ᄌᆡᆫ나비 ᄑᆞ람 불 제 뉘우ᄎᆞᆫᄃᆞᆯ 엇더리''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잔나비의 파람(휘파람) 소리는 죽은 뒤의 더없이 쓸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에 대해 허균은 "'수풀 너머 흰 잔나비 울음 부질없이 듣노라'와 같은 표현을 쓰는데, 우리나라에는 잔나비가 없지만 대개 시인들은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쓴다"라고 평하였다. 쓸쓸한 감흥을 표현하는 데 '재빠르다'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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