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숙청 방법은 다양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각본이 잘 짜인 공개 재판을 통해 숙청 대상자 스스로 '반혁명죄'를 고백하게 하는 것이다. 레닌 사후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때로는 스탈린과 때로는 트로츠키와 협력하거나 대립했던 부하린,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등 '고참 볼셰비키'들이 이렇게 당했다.
그다음으로는 암살이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트로츠키이다. 그는 숙청된 이후 국외로 추방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 멕시코에 '정착'했으나, 스페인 공산주의자 라몬 메르카데르가 내리친 등산 피켈에 정수리를 찍혀 끔찍한 고통 속에 사망했다. 스탈린의 사주(使嗾)가 분명했지만 메르카데르는 멕시코에서 20년을 복역하면서도 끝까지 입을 닫았다. 이 충성스러운 침묵에 스탈린은 소련 최고 훈장인 '소련연방영웅기장' 수여로 보답했다.
더 교묘한 방법도 있었다. 사고로 위장하는 것이다. 제거하고 싶지만, 꼬투리가 잡히지 않은 인물이 그 대상이었다. 트로츠키의 뒤를 이어 '붉은 군대'의 수장이 된 미하일 프룬제가 이 경우다. 군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그는 만성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스탈린의 지시로 수술을 받다 사망했다. 이것이 스탈린의 짓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정황은 스탈린이 죽인 게 분명함을 보여준다. 수술을 받으라는 권고에도 프룬제가 계속 거부하자 병원으로 찾아가서 의사에게 수술을 지시한 것이다.
재능 있는 유대인 배우로 모스크바 국립 유대인 극장 연출가였던 솔로몬 미쾰스도 같은 케이스다. '스탈린상'을 받을 정도로 스탈린의 총애를 받았으나, 1947년부터 시작한 스탈린의 소련 유대인 숙청 광풍에 휘말려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는 KGB의 전신인 MGB(국가보안부)에 의해 살해됐다. 당시에는 트럭에 의한 뺑소니 사고로 발표됐다. 훗날 밝혀진 진실은 끔찍하다. MGB가 뺑소니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그의 시신을 도로변에 버려두고 트럭이 그 위를 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김양건 암살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북한의 발표대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온건파인 그가 핵실험에 반대하다 강경파에게 제거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현재로선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장성택의 공개 재판과 처형이 보여주듯 김정은의 숙청 기술이 스탈린과 상당히 닳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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