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은 유재석과 함께 연말 예능 시상식의 대상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최강자'였다. 씨름 선수 생활을 접고 예능을 시작해 콩트부터 쇼 무대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버라이어티로 들어와 본격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리얼 버라이어티 전성시대를 만나 즉흥적인 순발력과 현장을 압도하는 존재감을 드러내며 예능계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2011년 탈세 의혹으로 인한 잠정 은퇴 선언을 계기로 아성은 무너졌다. 1년여 공백기를 가진 뒤 방송에 복귀했지만 성과는 예전만 못했다. '한물갔다'는 굴욕적인 평가 속에서 정상 탈환의 꿈이 좌절될 무렵 강호동은 자신의 주 활동 무대였던 지상파를 버리고 '야생'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웹 예능과 비지상파를 넘나들며 새롭게 자신의 설 자리를 다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상파 예능에서 만들어둔 '형식'과 '틀'에서 벗어나 트렌드를 따라잡으며 새로운 강호동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도 초반 평가는 '맑음'이다.
◆복귀 후 이어진 슬럼프로 고생
수년간 예능계 1인자로 군림했던 강호동의 진행 스타일은 그의 이름만큼이나 '강'했다. 스튜디오 예능이든 리얼 버라이어티든 항상 출연자들을 압도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진행방식 역시 강호동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MBC '무릎팍 도사'나 SBS '강심장' 등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는 게스트를 시종일관 밀어붙이며 자신이 원하는 답을 유도하는 집요함을 보여줬고, KBS 2TV '1박 2일' 등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고정멤버들을 이끌며 기운 넘치는 리더의 면모를 드러냈다. 때로는 동반 출연자들이 부담을 느끼기도 했을 정도로 강한 스타일이었지만, 그 당시 연타석 홈런 퍼레이드를 이어나가던 강호동에게 '딴지'를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1년여 공백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탈세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방송에 복귀했지만 과거와 달리 대중의 반응은 시들했다. 강호동의 대표적인 히트작이었던 MBC '무릎팍 도사'는 그의 복귀와 함께 다시 전파를 타기 시작했지만 바뀌어버린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한 채 저조한 시청률로 굴욕적인 종영을 했다. SBS '힐링캠프'를 비롯해 타 방송사의 토크쇼가 자리를 잡아 게스트 섭외 경쟁이 치열해졌고, 강호동의 불도저식 진행방식 역시 대중의 기호에서 멀어져 버린 상태였다. 트렌드에 발맞추지 못한 강호동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자신의 대표작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시작했던 SBS '맨발의 친구들'은 형편없는 시청률로 고전하다 8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KBS 2TV '달빛 프린스'도 두 달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같은 채널에서 론칭한 '투명인간' 역시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방송을 접었다.
유일하게 SBS '스타킹'이 인기를 유지했지만 스코어만 따져보면 강호동이 없을 때나 돌아왔을 때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이 그나마 복귀 후 새롭게 시작한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승승장구했으나 이 또한 '강호동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순 없었다. 오히려 매회 선정되는 스포츠 종목에 따라 가장 돋보이는 출연자는 따로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메인'이 아니라 '출연자 중 한 명'으로 함께할 뿐이다. 이쯤 되니 방송계 내에서도 '강호동'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특히나 어느 정도 부침이 있었다고 해도 꾸준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이벌 유재석과의 비교에서 밀려 그 초라함의 강도가 더 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 스타일 버리고 배우는 자세로 재도전
'다 죽어가던' 강호동은 최근 들어 다시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다 죽어간다'는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가 시작될 무렵에만 해도 강호동의 위치는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고 벼랑 끝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과거 강호동과 함께 '1박 2일'을 '국민 예능' 대열에 끌어올렸던 나영석 PD가 손을 내밀었다.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등으로 방송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나영석 PD의 부름이니 '천국행 동아줄'이 따로 없다. 이 줄을 움켜잡은 강호동은 TV가 아닌 인터넷에 공개되는 웹 예능 '신서유기'에 출연하게 됐다. 나영석 PD뿐 아니라 은지원-이수근-이승기 등 '1박 2일'의 원년멤버들이 함께했다. 국내 최초 웹 예능 '신서유기'는 방송용이 아니었기에 한층 더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해 큰 재미를 주며 화제가 됐다. 지난해 9월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공개된 이 프로그램은 2016년 1월 초 현재까지 무려 5천360만 건의 동영상 재생 수를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서유기'는 강호동에게 현재의 예능 트렌드가 어떤 형태인지 깨닫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강하고 센 진행 스타일을 내세우긴 했지만 사실 강호동은 지상파 예능에만 출연했던 인물이다. 어쩔 수 없이 항상 '적정 수위'를 고려하는 방송을 해야 했다. 표현에 있어 지상파보다 한층 더 자유로운 비지상파 예능이 상승세를 타며 예능 프로그램의 수위가 높아졌지만 강호동은 여전히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 결국 이 '틀'이 복귀 후 강호동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와중에 만난 '신서유기'는 강호동에게 예능의 '새로운 판'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됐다.
실제로 '신서유기'에서는 '셀프 디스'까지 곁들이며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는 이승기를 보며 놀라는 강호동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은지원까지 이에 가세하자 "나는 이거 못 하겠다"며 카메라를 피하려 애를 쓰기도 한다. 지킬 것 지켜가며 수위 걱정을 하던 지상파 예능과는 판이하게 다른, 자신의 '강함'과는 또 다른 '센 것'을 요구하는 이 새로운 형식의 예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그러나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강호동은 자신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못해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적응해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기존의 강호동과 달라, 오히려 보는 이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신서유기' 이후 강호동은 MBC에서 '무릎팍도사' 등을 함께했던 여운혁 현 JTBC 예능2국장을 따라 비지상파로 활동폭을 넓혔다. 그러고는 지난해 12월부터 '아는 형님' '마리와 나', 그리고 최근 촬영을 시작한 '쿡가대표'까지 세 편의 프로그램에 차례로 출연하고 있다. 신동엽과 이경규가 일찌감치 비지상파로 진입할 때도 지상파 외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강호동이다. 요지부동이던 강호동이 트렌드의 변화를 느끼고 '야생'으로 뛰쳐나가 정면 승부를 선언한 셈이다.
아직 초반이지만 현재까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시청자들의 질문에 대한 결과를 얻기 위해 무작정 실험을 감행하는 '아는 형님'에서는 좌충우돌 몸 개그에 무모한 말싸움까지 이어가며 웃음을 유발한다. 일반인들의 반려동물을 맡아 돌봐주는 과정을 보여주는 '마리와 나'에서는 동물과의 관계 형성에 애를 먹으며 진땀 흘린다. 무엇보다 두 편의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과거와 달리 '대장'이 되려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타 출연자들과의 '케미'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어깨에 힘을 빼고 촬영현장 속에 스스로를 녹이려 하니 보는 이들도 한층 편안해진다. 그동안 일궈놓은 것들을 뽑아버리고 새롭게 밭을 갈아엎는 것도 아무나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시상식에서 기도 펴지 못하던 강호동의 신년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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