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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 빛나는 실버] 해외봉사 다녀온 이승소 씨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승소 씨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현지 주민들과 일하고 있다. 이승소 씨 제공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 봉사활동에 참여한 이승소 씨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현지 주민들과 일하고 있다. 이승소 씨 제공

이승소(62'대구시 중구 남산4동) 씨는 34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명예퇴직 후에는 민간기업과 공기업에서 잠시 근무했다. 이곳저곳의 생리와 환경을 경험하며 그 나름대로 퇴직에 대한 마음 정리가 되었을 때 우연히 해외 봉사활동의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이 조금은 초췌한 것 같았다.

◆해외봉사를 떠나다

이 씨는 보수를 생각하지 않는, 평소 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직장에서 봉사활동을 다녔으나 무료 급식과 설거지 봉사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꿈꿨다. 해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동경도 있었다.

꿈은 현실로 이뤄졌다. 한국국제협력단의 해외 자원봉사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아주 매력적이고 근사할 것 같다'는 설렘을 안고 일을 추진했다. "함께 떠난 봉사단원들과 임무를 잘 마치고 건강하게 귀국하는 소박한 목표를 구상했습니다. 저의 경륜과 경험으로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섣부른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아프리카 르완다 오지마을의 해발 1,700m 고지는 척박했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삼시세끼 식사와 빨래도 때로는 버거웠다. 낮에는 황열모기, 밤에는 말라리아모기로 잠을 설쳤고 쥐와 벼룩까지 극성을 부렸다. 무리한 일정으로 병원 신세까지 졌다.

르완다 해외 봉사는 우리나라 '한강의 기적'을 모토로 하여 르완다식 새마을운동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수로를 만들어 벼를 심는 논농사와 가축을 기르는 사업을 한다. 한 마을에 5년간 정착하여 지원해 주고, 그 마을 사업이 끝나면 다른 마을로 이동한다. 물론 르완다 정부와의 협력 아래에 이루어지는 사업이었다.

이 씨가 맡은 분야는 '가축은행 사업'이었다. 돼지 한 마리 구입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자립의 뿌리를 내려주는 것이다. "저는 가축 사육 전문가가 아닙니다. 어릴 때 집에서 돼지 기르는 것을 봤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돼지 사육 매뉴얼을 보고 수의사와 끊임없는 토론을 했지요. 봉사자들이 철수한 뒤에도 현지인이 돼지를 사육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할 뿐입니다."

◆봉사를 다녀온 후 마음가짐

이 씨는 해외봉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개를 숙일 뿐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봉사자로서의 역할이 정말 미미해 반성한다고 겸손해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에게는 큰 배움의 시간이었다고 귀띔했다.

"르완다에서의 생활은 삶의 길을 멈추게 하고, 저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고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이란 것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체험을 통해 배웠다고 해야겠지요. 봉사활동은 저를 성숙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저를 뒤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유통기한이 8개월이나 지난 한국 라면을 먹던 순간은 단전'단수의 불편 속에서 누리는 호사였다. 현지인이 돼지 새끼를 보며 행복해하는 모습에서는 자신의 일처럼 즐거웠다. 14개월간의 시간은 그에게 자성과 여유를 맛보여 주었으니 행복했노라고 평가하고 싶단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서 온다고 하지 않던가. 이 씨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의 경험과 애환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분명 새로운 자양분으로 승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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