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 기반의 정치판 지역 패권주의
서울 사람 눈에는 한심한 시골 패싸움
'새정치'내건 야권도 호남정치 부활 타령
향우회 정치에서 얻는 게 과연 무엇인가
본적은 충청도라 하나 태어나서 기억나는 것은 서울 안팎의 풍경밖에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지역감정이라는 것만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없다. 서울에 살다가, 독일에 살다가, 경기도에 살다가, 필리핀에 살다가, 지금은 다시 영주와 서울을 오가며 사는 나에게 '지역'이란 그저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어떤 것이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넓으면 모르겠다. 서울에서 KTX를 타면 두 시간 남짓 안에 국토의 끝에 도달하는 나라에서, 웬 놈의 지역색이 그토록 집요하고 강고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맥루언은 텔레비전만 있어도 '지구촌'이 형성된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유무선 인터넷망이 가장 높은 밀도로 깔린 나라에서 도대체 왜 지역감정이라는 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언젠가 한 네티즌이 올린 '서울 사람이 본 한국'이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서울 사람'이 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이렇다. '서울'이 있고, 나머지는 '시골'이다. 동해에는 '우리 땅'(독도)이 있고, 남해에는 신혼여행(제주도)이 있다.
그러니 영남 패권이니 호남 패권이니 하며 출신지 드러내며 원색적으로 싸워 봤자, 이런 '서울 사람' 눈에는 그저 시골 사람들의 한심한 패싸움으로나 비칠 뿐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있다. 까놓고 말하건대 "그들은 남이다". 언제 그 높으신 분들이 자기를 챙겨줬다고 남이 아니라고 착각하는가.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선거철마다 본적지에 내려와 드높은 향토 의식을 과시하시는 그분들도 정신적으로는 자신을 기꺼이 서울 사람, 거기서 강남 '특별구'의 주민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이는 호남 지역의 선량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엔 주로 영남의 정치인들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면, 최근에는 호남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있다. 아예 책으로 이론적 정당화까지 하는 것을 보면 '감정' 수준에 머물던 그것이 그새 하나의 세계관으로까지 발전한 모양이다. 정치인이 그런다면 그냥 혀를 차고 넘길 일이지만, 지식인들까지 그 짓에 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차별은 그 어떤 것이든 정당화될 수 없다. 정말 지역 차별이 존재한다면, 객관적 자료로 그 현황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자료를 뒤져 봐도 지역별 1인당 GDP는 서울과 울산이 다소 높을 뿐 전국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영호남 사이보다는 차라리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찾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차별은 따로 있다.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다. 그것은 통계로도 확연하게 잡힌다. 작년 8월 통계에 따르면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의 54.4%에 불과하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정규직이 70~80%라면 비정규직은 30~40%에 불과하다. 성차별도 있다. 한국의 남녀 임금 평등도는 세계 116위, 임금 격차가 네팔이나 캄보디아보다 크다. 이런 건 차별도 아니란 말인가?
새누리당은 그렇다 치고, 이런 것을 바로잡아야 할 야권에서 고작 '새 정치'를 표방하며 내건 시대정신이 '호남정치 부활'이라고 한다. 죽은 줄 알았던 동교동계가 오직 탈당을 위해 무덤에서 부활한 모습은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만큼 을씨년스러웠다.
그들이 부활하겠다고 하는 '호남정치'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 상황에서 비정규직과 여성 노동자가 되찾아야 할 것이 과연 '고향'이어야 하는가?
최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느닷없이 김종필 옹에게 생일축하 편지를 보냄으로써 여기에 또 하나의 향토색을 보탰다. 이 편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경상도, 전라도에 이어 드디어 우리 충청인이 나설 때가 된 것인가? 그래, 어차피 이 나라의 정치는 향우회 정치. 전국의 향토인이여 각자 단결하라. 당신들이 잃을 것은 자식들의 정규직이요, 얻을 것은 동향인의 의원직이요 대통령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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