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상무(66)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수재(秀才)다. 대구의전을 졸업하고 서울대에 편입한 아버지가 6'25때 실종되고 어머니는 산후병이 심해 이 사장이 네 살 때 돌아가셨다. 과수원을 하던 조부모 밑에서 외동으로 컸지만 서울대에 들어갔고, 대학 때는 술 마시고 연극반에만 기웃거리다 잠깐(?) 고향 은해사에서 공부해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농민의 손자, 이 사장은 이후 농림부에서 잔뼈가 굵었고 평생 농업과 농촌 문제에 골몰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필리핀 주재대표와 한국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혔다. 당시 인맥으로 베트남과 미얀마 대통령 등은 현재 친구나 가까운 사이가 됐고, 이 네트워크로 농어촌공사의 해외사업 규모를 취임 전보다 5배가량 늘렸다. 이 사장이 보는 농촌 문제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 등을 들어봤다.
-농촌의 근본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나.
▶고령화와 이농(離農) 문제다. 젊은이와 일자리가 없다. 농업도 경제이자 산업인데, 보호'지원'육성하는 정책만 펴다 보니 경쟁력을 높이지 못했다. 농촌에 일자리가 없다는 점과 함께 대중 편의시설, 교통수단, 문화시설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농촌 문제를 푸는 고리는.
▶농촌에서 먹고살 것이 농업밖에 없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농촌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농사지을 힘도 없는 상황에서 논 직불금 등으로 문제를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농촌 고령인구에 대해서는 농업정책이 아니라 사회보장 측면에서 도시와 마찬가지로 기초생활보장제에 따라 최소생계비를 지급해야 한다.
-고령화 문제만 해결된다고 농촌 문제가 모두 풀리나.
▶농촌에 일자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촌에 있으면서 농사는 짓지 않는 '재촌탈농'(在村脫農)이 필요하다. 최소한 농촌인구의 70~80% 정도 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귀농보다 귀촌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농촌에 다른 산업이 들어가야 한다.
-농업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정부 지원을 받는 고령인구에 대해서는 사회보장 차원에서 정부가 생계비 등을 지원하는 대신 농업의 규모화와 마케팅 등 경쟁력을 갖춘 농업인들에게 정책적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마케팅을 포함한 6차 산업으로서의 농업 경쟁력과 기술 수준, 농기계와 사료업 등 농산업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일자리 창출과 귀촌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농촌에 다른 산업의 유치가 가능한가.
▶일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이후 '지방공업육성법'을 제정해 공장을 지으려면 도시가 아니라 농촌으로 가도록 했다. 일본에는 공단이 모두 농촌에 있어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거의 없다. 도요타그룹 본사와 협력업체들은 아이치현에 다 있다. 제조업 등이 지방에 분산돼 있어 농촌에 취직 자리가 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주할 이유가 없다. 이처럼 일본은 1970년대부터 농가소득 중 농외소득을 꾸준히 높여 현재는 농가소득의 95%가 농외소득이다. 일본은 비록 농업 경쟁력이 높지 않지만, 농촌 문제는 크게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농가소득 중 농외소득이 50%가량에 불과하다. 농촌은 도시 근교에 비해 땅값이 싸기 때문에 인센티브를 더 주면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 현재 농공단지와 지방산업단지도 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법, 농지법, 환경관련법 등으로 묶어 놓은 규제를 풀어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기업은 수익만 나면 지옥에도 간다'는 말이 있다.
-일자리만으로 젊은이들의 이농을 막을 수 있나.
▶일자리가 최우선이다. 다음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문화'교통 등 제반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농촌에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우수교사를 확보해 인성교육 등 교육의 질을 높이고, 원격'화상진료 등 의료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또 자동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500가구가량을 묶어 주는 주거정책을 펴 식당, 목욕탕, 만화방 등 대중 편의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농산어촌 행복충전버스 같은 대중교통 여건을 개선하고, 영화'공연 등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공사 사장 취임 이후 성과는
▶2년 전 취임사에서 공사의 정체성 찾기, 농어촌 발전정책과 제도 마련, 공기업 혁신 선도 등 3가지를 얘기했다. 이 중 정체성 확립과 혁신은 상당 부분 이뤄냈다고 자부한다.
농어촌공사가 방조제와 저수지 관리, 농업용수 공급 등 농업 인프라를 주로 담당하지만, 기본적인 임무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취임 이후 '행복한 농어촌을 만드는 것은 무슨 일이든 한다'라는 차원에서 '행복한 농어촌을 만드는 글로벌 공기업'이란 모토를 내세웠고, 2년이 지난 지금 직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농어촌 관련 정책 건의와 제도 개선 등은 일부 이뤄냈으나, 정책과 제도 마련은 한계상 큰 성과는 내지 못했다.
-공기업 혁신의 내용은.
▶사무공간 활용, 회의 방식, 인사제도 등에서 획기적 변화를 이끌었다.
혁신도시 이전을 1년가량 앞둔 상황에서 이전지 본사 건물의 내부 설계를 완전히 바꿨다. 사장실을 비롯해 임원실 등의 불필요한 공간을 확 줄이고, 복도와 벽 등을 없애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현장근무 등이 많은 점을 감안해 직원 데스크를 30%가량 줄이는 대신 직원들 간 소통'협업 공간과 복리후생 공간을 대폭 확충했다. 불필요한 주간'월례회의와 간부회의를 줄이는 대신 직원들 간 아이디어회의를 늘리고, 자리보다 일 중심으로 바꿈으로써 '스마트 오피스'(smart office)를 통한 '스마트 워크'(smart work)를 추구했다. 직원들이 굳이 사무실을 지키지 않더라도 자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복무규정도 바꿨다. 전자결재 등을 통해 결재 효율성을 높이고, 객관적 인사제도를 확립해 직원 만족도를 높였다.
그 결과 행정자치부 등으로부터 공기업 혁신의 선진지로 지정돼 외부에서 견학도 오고, 모범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공사의 미래 비전은.
▶공사의 연매출이 정부예산과 수탁사업을 포함해 연간 4조5천억원가량인데, 30년 후 매출을 10배 이상 올릴 방안을 갖고 있다.
현재 국내 농업 인프라는 거의 갖췄기 때문에 앞으로는 북한과 해외 등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북한 농업 인프라 재건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선진국이 연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공적개발원조(ODA)도 1천조원 이상이다. 중국이 아프리카 우간다에 수년에 걸쳐 주는 차관(소프트론)이 10조원 이상이고, 우리나라 수출입은행이 개도국에 지원하는 차관도 연간 조 단위다. 농어촌공사가 이 지원금에 따른 사업 일부만 해도 상당한 규모가 될 수 있다. 해외농장 개척과 해외농업 개발에도 공사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
올해 초 성장전략실을 신설해 우리가 100년 후에 무엇을 할지 팀을 꾸려 연구하도록 했는데, 최근 놀랄 만한 신성장동력 사업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의 글로벌 공기업으로 나갈 것이다.
-북한 농업 기반 건설 준비는.
▶북한 농촌단지 건설을 위한 마스트플랜을 이미 짜 놓았다. 북한 경제특구 중 농업 관련 특구가 어랑, 숙천, 북청 등 3곳 있는데,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도 위성을 활용해 공간 이용 계획까지 모두 마련해 놓았다. 2년 전 공사 산하 농어촌연구원 북한연구센터를 협력센터로 승격해 북한 농업 인프라 건설 계획을 준비했다. 통일부 등 정부기관과 협의했고, 북한이 올해부터라도 협력사업을 하자고 하면 당장 착수할 수 있을 정도다.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 ①정체성 ②건강 ③선행
"아프지 않고, 죄 짓지 않으면서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분명 행복해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상무 사장은 '자신이 진정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 같으면서도 시사하는 점이 있었다. 그는 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정체성 찾기 ▷건강 유지'관리 ▷좋은 일 하기 등 3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내 정체성을 제대로 아는 것,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산다면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 또 "행복보다 건강이 우선이고, 건강을 잘 유지'관리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 사장은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라. 어쩌다 거짓말이나 나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하더라도 가능하면 의도적으로는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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