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엄마, 아버지를 뵈러 갔다. 엄마는 아파트 정문에서 딸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 본 적이 없다. 우리 아버지는 4남매가 어렸을 때에는 어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자라서도 서먹하고 어색하고 가깝지 않은 표현의 어떤 말을 붙여도 대부분 해당될 법한 가부장적인 경상도 아버지셨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다가 팔을 벌려 나를 맞이해 주셨다. 팔을 벌려 맞아주시는 것도 놀랐지만 나를 한 번 더 놀라게 한 것은 아버지께서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를 보고 계신 것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처음 본 모습은 이전에도 몇 가지 더 있기는 하다. 자식들은 한 번도 안아주거나 업어주지 않으셨으면서 손녀를 보실 때는 안아서 얼러주던 모습, 할머니와 할아버지 장례 때 꿋꿋이 맏아들로서 상주의 자리를 지키셨던 분이 항암 투병하는 엄마를 서울에 두고 혼자 대구로 내려와 당신의 부모님 제사를 지내시며 무릎 꿇고 엄마 좀 살려달라고 흐느끼시던 모습 등은 서슬 푸른 예전 아버지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회사원으로 일하시다 퇴직 후 사업을 하셨다. 사업을 접으면서 사업체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었고 그로 인해 빚을 떠안게 됐다.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기초의원으로 나가 당선되었지만 재선에는 실패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모든 행보가 과욕으로 여겨졌고 그것으로 엄마가 고생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후두암 판정을 받으셨을 때는 60대 후반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인생은 이제 여생으로 그저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꾸준한 건강관리로 완쾌 판정을 받으시고 지역대학 평생 대학교에 등록, 한자 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따고 학교 방과 후 교사를 하시며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수필문예대학 강의도 들으시고 컴퓨터를 배우시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팔순을 앞두고 당신이 직접 컴퓨터로 쓴 수필로 수필집을 출간해 지인들께 나누는 것으로 팔순잔치를 대신하기도 하셨다. 시골 큰언니네 농장에서 수확한 질 좋은 꿀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도 하는 등 아버지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팔순이 넘은 요즘도 노인복지회관에 가셔서 운동과 서예도 배우시고 집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글을 쓰시기도 한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 감상까지.
아버지를 바라보며 '수구초심'이라는 말은 인간이 나이가 들면서 고향으로 머리를 둔다는 것뿐만 아니라 호모루덴스, 놀이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고령화 사회,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인복지 정책은 문화예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활동으로 쉼 없이 달려온 많은 어르신의 삶의 쉼표 혹은 새로운 시작의 즈음, 문화예술의 멋과 맛을 보여 드리고 알게 해드리는 것은 아름다운 삶이라는 선물의 포장끈을 쥐여 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 세대, 모든 아버지들의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를 응원한다. 원더풀! 아빠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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