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이준성(45) 씨는 스스로를 '보부상'이나 다름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2, 3년에 한 번꼴로 점포를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구에서 철물점을 운영했고, 대봉동 가구점에 이어 지금은 남구 봉덕시장 근처에서 생필품을 팔고 있다. 이 씨는 "수입이 크게 나쁘지 않았는데 가는 곳마다 상권이 커지면서 임대료가 올라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야만 했다"고 투덜댔다.
대구 도심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도심 재개발 사업이 활성화하고, 수년간 대구 아파트 분양시장이 살아나면서 신흥 상권이 앞다퉈 생겨나고 있어서다.
현재 대구에서 가장 명소로 떠오른 중구 방천시장과 김광석길 상권이 대표적이다. 방천시장은 중구청이 인적이 끊긴 시장을 살리고자 문화가 가미된 시장을 표방하며 상권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상권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생겨났다. 토박이 영세 상인과 예술인들이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하나 둘 떠나갔고, 빼곡히 들어선 음식점이 점차 시장 기능을 밀어냈다.
중구청에 따르면 이 일대는 일반음식점 87곳, 휴게음식점(커피숍 포함) 14곳, 제과점 4곳이 성업 중이다. 2011년만 하더라도 음식점은 4곳에 불과했고, 휴게음식점은 1곳뿐이었다.
중구 대봉동 센트로팰리스 주변 상권도 사정은 비슷하다.
가구점, 중고 가전제품 거리였던 일대가 식당, 맥줏집 등 먹을거리 골목으로 거듭나면서 영세 상인들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 일대에 식당가가 형성되면서 99㎡(30평)에 70만원하던 월세가 현재는 300만원을 줘도 구하기 힘들다. 권리금도 웬만하면 1억원이 넘고, 그나마 매물도 없다는 것이다.
동촌유원지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겪고 있다. 2012년 61곳이던 식당이 지난해 77곳으로 늘었고, 휴게음식점도 7곳에서 12곳으로 늘었다. 원래 있던 파전집, 매운탕집 등은 대형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한 상인은 "상권이 커지는 게 서민 자영업자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고 씁쓸해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궁극적으로 상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서울의 대표 상권이었던 홍대 등은 비싼 임대료 때문에 현재 공실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 도심 소규모 매장 공실률이 상반기 3.4%에서 3.7%로 늘어난 데 비해 홍대'합정 인근은 6.2%에서 8.4%로 더 큰 폭으로 올랐다.
권오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이사는 "음식도 갑자기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듯 상권도 급하게 활성화돼 임대료 등이 비싸지면 한순간에 위축될 수 있다"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한 점진적 개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 개발로 낙후 지역에 고급 주거'상업시설이 형성(젠트리파이'gentrify)되면서, 중산층 이상인 사람들이 몰리고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소상인이 내쫓기는 현상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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