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중은행 "대구 대출, 부산서 결정"

기업·국민·우리·하나은행…대구 사무소 부행장급 없어 현장 권한 강화 DGB와 대조

"대출 연장만 해주시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겠습니다."

지난해 말 대구에서 중견업체를 운영하는 A대표는 대구에 있는 한 시중은행의 본부장을 찾아가 통사정을 했다. 자금 경색으로 부도 위기까지 몰린 A대표가 대출 연장을 위해 주거래은행인 B시중은행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권한이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대구은행장을 찾아 사정을 설명한 A대표는 대출 연장에다 추가 대출까지 받을 수 있었다.

대구경북에 입점한 시중은행을 관리'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들의 직급이 지나치게 낮은 탓에 대출 여부 등을 결정하는 전결권이 약해 대구경북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들은 부산지역 경영자(부행장급)의 관리를 받는 상태로 대구경북 금융이 부산 금융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 금융권에서 DGB대구은행을 제외하고는 '부행장급'이 전무한 상태다. IBK기업은행은 14일 조직 개편을 통해 대구경북본부를 동서로 나눴다. 이에 따라 대구경북에 본부 1곳이 더 늘어난 셈. 본부가 하나 더 늘었지만 부행장은 임명하지 않았다. 부산은 물론 경제 규모가 대구경북보다 작은 호남에도 부행장이 있지만 대구경북에 부장급 본부장 한 명만 더 늘어난 셈이다.

13일 조직 개편과 인사를 단행한 KB국민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 기존 동'서 본부장 두 명이 지역을 양분해 관리하는 체제에서 그룹별로 조직을 재편해 본부장들이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전결권 등이 오히려 약해졌다는 평가다.

지난해 조직 개편을 단행한 우리은행 역시 2본부 체제로 개편했지만 본부장 한 명만 더 늘리는 데 그쳤다. 지난해 연말 조직 개편을 단행한 하나은행의 경우 영남권 본부가 있는 부산지역 부행장이 대구경북까지 관할하는 구조다. DGB대구은행이 지난해부터 서울'부울경 등 지역본부장들을 부행장급으로 임명해 현장 전결권을 강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증권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굿모닝 신한증권'하나투자증권 등 대부분의 증권사가 부산지역 본부 소속으로 중요한 투자 결정의 경우 부산지역 본부장들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시중은행 대구경북 본부장들의 전결권이 약하다 보니 대출 연장 등 은행을 이용하는 대구경북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구에 있는 본부장들의 직급이 낮다 보니 자연스레 전결권이 약해 보수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충분히 대출을 갚을 여력이 있는 기업이거나 단순한 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는 기업에도 대출을 거절하거나 담보를 보수적으로 잡게 된다"고 귀띔했다.

대구 금융이 부산으로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들과 금융기관의 경우 영남권을 통합해 대구경북 은행 지점들을 부산의 하부 조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CEO연구원 고건영 컨설팅 팀장은 "금융의 수도권 집중화에 이어 금융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부산이 빠르게 대구경북 금융을 흡수하고 있다. 더구나 대구경북이 경제 규모가 작은 광주'충청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인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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