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폭탄은 눈이 없다

20년 전 마드리드에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를 본 적이 있다. 1937년 나치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항의하기 위해 그린 이 작품은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로 유명하다. 기념비적인 작품인 만큼 큰 기대감을 가졌지만 미술 문외한의 얄팍한 지식 탓인지, 현대 매체의 자극에 물든 탓인지 그리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국보(國寶) 대접을 한답시고 작품에 방탄유리를 씌워놓아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사적으로는 나치의 게르니카 폭격은 전투원이 아닌, 일반 주민을 표적으로 한 최초의 사례다. 20~ 30t의 폭탄이 투하돼 이 작은 도시의 70%가 파괴됐다. 당시 영국의 한 신문 특파원은 "남은 것은 불과 연기, 잿가루뿐이었고 시체 타는 냄새로 토할 것만 같았다. 집들은 지옥 같은 광경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고 썼다. 남자들은 전장에 나가 희생자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였다. 피카소가 땅을 치고 분개할 만한 참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군인, 민간인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폭격의 역사였다. 도시와 인간을 깡그리 불태워 상대방의 전쟁 의지를 꺾어놓으려 했다. 무차별 폭격을 시작한 독일이 보복을 받아 모든 도시가 불탔고, 민간인 60만 명이 죽었다. 그중 8만 명이 어린아이였다. 독일 일각에서 영국 처칠 총리를 전범으로 여기는 이유다. 일본도 미군 B-29의 소이탄 공격으로 도쿄에서 하루 동안 10만 명이 죽었다. 원자폭탄 투하 때보다 더 많은 사망자였다.

한국전쟁 동안 미군은 북한에 47만6천t의 폭탄을 투하해 아예 잿더미로 만들었다. 김일성 전 주석이 가장 무서워한 것이 미군 폭격기였고, 이 때문에 군사 및 주요 산업시설을 지하로 숨겨놓았다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얘기다.

베트남전에도 미군 B-52의 융단폭격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민간인이 죽었고, 최근에도 이라크,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민간인 오폭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비행기와 폭탄이 첨단화됐다고 하지만, 오폭 없는 '정밀 폭격'이란 말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폭탄은 눈이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B-52 폭격기가 한반도 상공을 날아다녔다. 핵폭탄이나 폭격이나 섬뜩하기는 마찬가지다. 전쟁을 일으킨 수괴가 폭격에 당한 사례는 없다. 죽어나는 것은 애꿎은 민간인뿐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전쟁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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