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진 불출마] 박 대통령 옛 지역구서 울린 '친박 교통정리' 서곡

18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종진 의원이 달성지역 출마를 선언한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과 손을 맞잡고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18일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종진 의원이 달성지역 출마를 선언한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과 손을 맞잡고 지지를 선언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이종진 의원(대구 달성군)의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대구 총선판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옛 지역구였던 상징성으로 '친박'(친박근혜) 진영의 후보가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총선판을 뒤흔드는 진앙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역 의원인 이 의원의 사퇴를 진박(진실한 친박)계 후보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곡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이종진 자진사퇴냐, 외부압박이냐?

18일 이 의원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친박 핵심이나 청와대의 압박설을 일축했지만 최근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이날 새누리당 대구시당에서 열린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이 의원은 "압력을 받거나,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불출마 선언을 한 것은 전혀 없다"며 압력설을 부인했다. 다만, 달성군 새누리당 후보 자격을 놓고 갈등이 심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고심이 많았지만 결론은 새로운 사람이 우리 지역과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저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용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해석은 이 의원의 주장과 큰 차이가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3일 대구경북 현역 의원 가운데 처음으로 예비후보로 등록, 달성군에 출사표를 던진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과의 일전 불사를 외쳤다. 당시 "경선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예비후보자 선거사무소 개소식까지 앞두고 있었다.

지역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 관계자는 "현역 의원이 예비후보 등록을 잘 하지 않는데 이 의원이 제일 먼저 등록했다. 당시 굉장한 전투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이런 결심을 5일 만에 뒤엎은 것은 '윗선'의 권유나 압박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이 의원의 결정은 갑작스레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 의원은 사퇴 결심을 세운 시점을 지난 17일 저녁이라고 밝혔다. 참모진과 사전 상의 없이 이뤄진 것으로, 보좌진들도 "오늘(18일) 아침에 들었다" "전혀 몰랐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말쯤 외부와의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 동료 의원들과 교감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출마 선언 당일인 18일 오전 11시 대한노인회 대구연합회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을 만났으나 불출마 결심을 함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승민, 김희국, 홍지만, 윤재옥, 김상훈, 류성걸 의원이 함께했었다. 이 의원은 기자와 만나 "(동료 의원들이) 말릴까 봐 이야기를 안 했다"며 말을 아낀 이유를 설명했다.

또 이 의원은 평소 사석에서 "청와대의 요청이 없다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바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4선을 지낸 지역을 물려받은 그가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제2, 3의 이종진 나오나…초선 의원들 긴장

정치권은 이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대구 총선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특히 대구 초선 의원들의 긴장감은 더하다. 대구 한 의원은 "현역 의원으로 이례적으로 예비후보 등록까지 하고 '완주'를 공식적으로 다짐했던 이 의원이 진박으로 불리는 추 전 실장의 출마 선언 닷새 만에 불출마를 선언한 대목이 심상치 않다"면서 "초선은 물론이고 중진 의원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손의 압박이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공교롭게도 비박(비박근혜)계 좌장 격인 김무성 대표가 신년회견에서 "앞으로 공천 과정에 '소수 권력자와 계파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한 직후 나온 점도 우연이라고만 보기 다소 어렵지 않으냐는 분석도 있다.

불출마 회견장에 경쟁자였던 추 전 실장이 함께 자리를 한 데다, 이 의원이 "추 전 실장을 믿고 백의종군하겠다"며 전폭 지원을 약속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비박계인 새누리당 관계자는 "주류인 친박계가 대구에 출마할 후보 가운데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보는 인물들을 새롭게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이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대구의 현역 의원 한두 명 정도에게도 이 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불출마를 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자리' 제공을 내세울 것으로 보이는 '교통정리'의 다음 대상은 비박계인 초선 의원 일부가 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구의 현역 의원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청와대와 중앙당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지대한 대구에서 친박 주류의 이 같은 일방적 재배치 움직임은 이미 지난달부터 공공연하게 포착됐지만 뚜렷한 저항의 기류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한 현역 의원은 "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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