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부패척결 부러워하는 중남미
서민들 준법정신은 우리보다 나아
한국은 유명인에만 법적 정의 요구
OECD 국가에 걸맞은 정의 실천 필요
중남미 지역에서 한국, 즉 Corea가 긍정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치르면서부터다. 그 이전에 중남미에서 한국 하면 북한 관련 전쟁 위험 소식이나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오래전 뉴스 장면만을 떠올리기 일쑤였다.
당시 월드컵에서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4강에 들게 되자 축구의 대륙답게 중남미 어느 나라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한국인이라고 하면 화제는 단연 축구였다. 또 월드컵 기간 중 한국을 취재한 현지 기자들이 전한 한국의 발전상과 역동성도 호기심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월드컵 대회가 끝나고 몇 개월쯤 후에 멕시코와 페루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현지 택시를 타건 공원을 산책하건 호기심 많은 중남미인의 질문과 코멘트가 쏟아졌다.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축구도 잘하지, 기술도 뛰어나지, 미국한테도 큰소리를 치지, 게다가 정의까지 살아있는 나라다." "우리 라티노(중남미인들은 스스로를 칭할 때 Latino란 말을 쓴다)들은 너무 느긋하고 체계적이지 못해 도저히 한국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국인은 독일인처럼 부지런하고, 일본인처럼 손재주가 있으면서도 라티노처럼 정이 넘치니 다 갖춘 것 아니겠는가?"라는 식으로 우리 한국과 한국인을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말을 심지어 산골 오지의 촌로한테도 수차례 들었다. 모두 비슷한 코멘트였지만 여러 번 들어도 싫지 않은 말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큰소리친다는 것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반미적이지 않은 한국인데 미국에 감히 큰소리를 친다고? 알고 보니 남한과 북한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단순히 Corea로만 알고 있던 그들이기에 당시 핵미사일 발사 운운하며 미국에 대해 온갖 비난을 해대던 북한 뉴스를 보고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의 부정부패도 중남미 못지않았는데 정의가 살아있다니? 알고 보니 정치자금 수뢰 혐의로 두 전직 대통령이 재판받고 감옥에 가는 장면을 TV로 접한 그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멕시코에서는 대통령 하고 나면 비행기에 금을 가득 싣고 미국으로 간다는 우스갯말이 돌던 시절에도 누구 하나 구속은커녕 재판에 회부되는 일도 별로 없었고, 페루에서는 중앙정보부 수장이 야당 국회의원을 거액으로 매수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도되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서양에서는 개인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사안을 갖고 우리는 아주 엄격한 법적 정의와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한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 사회 순화에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크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요구를 하는 우리 일반인들의 준법정신과 공중도덕 수준은 중남미인들이 부러워하는 경제 발전 수준에 걸맞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벌써 30년 전에 여섯 살 난 딸아이를 데리고 과테말라 영화관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한 적이 있다. 별것 아닌 미성년자 관람 금지 영화에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단호하게 불가였다.
멕시코 지방 소도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길거리 허름한 포장마차 같은 데서 간이 음식인 타코를 안주 삼아 한 잔 들이켜려 하니 노점 아주머니가 정색하고 말린다. 야외 음주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야 유적지에 가서 다 허물어져 가는 건축물 잔해 더미에 기어 올라갔다가 현지 관리인에게 호되게 야단맞은 적도 있다.
중남미 서민들의 이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명색이 OECD 국가의 대접 잘 받는 대학교수인 내가 스스로 부끄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학생에겐 본분을 다하라고 가르치면서 나는 교수로서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큰 정의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작은 정의 실천은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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