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10>마침내 해인사 품에 안기다

한양서 달포간 달려온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에 차곡차곡…

합천군과 해인사는 2013년 대장경세계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재현 행사를 열었다. 합천군 제공
합천군과 해인사는 2013년 대장경세계문화축제를 개최하면서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재현 행사를 열었다. 합천군 제공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 합천군 제공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모셔져 있는 팔만대장경. 합천군 제공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벽면에 경판 옮기는 과정을 묘사한 상상도.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벽면에 경판 옮기는 과정을 묘사한 상상도.

국내 최초로 팔만대장경 이운 길을 스토리텔링했다. 고증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경판 이운 길을 찾아가는 것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갔던 길을 두세 번 다시 되짚기도 했다.

처음에는 막막함이 앞섰지만, 팔만대장경을 제작하고, 한양 지천사에서 합천 해인사까지 옮겨올 때까지 나라를 생각하는 불심으로 길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됐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깊이 있게 연구를 하고 더 많은 것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다행히 합천군과 해인사는 2017년 팔만대장경 이운 재현 행사를 앞두고 있다. 고령군과 성주군 역시 올해 팔만대장경 이운 순례길 걷기행사를 준비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고찰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팔만대장경 경판 해인사 품에 안겨

조선 태조 7년(1398년) 해가 어둑어둑 넘어나는 가을 끝자락에 해인사에서 불경 소리가 흘러나온다. 불경과 목탁,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온통 메아리치고 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져 올수록 해인사 승려들의 목탁 치는 소리와 불경 읊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둥! 둥! 둥! 해인사 법고가 힘차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법고가 울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합장을 하고 절을 한다.

해인사 일주문을 들어서는 환암대사는 안도의 한숨과 기쁨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드디어 합천 해인사에 도착했다. 한양 지천사에서 달포 가까이 쉼 없이 달려온 팔만대장경 경판.

해인사 주지는 두 손으로 팔만대장경 경판을 받아 해인사의 주 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 뒤 장경판전으로 향한다. 수다라장 안에 경판이 하나둘 꽂힌다.

해인사(海印寺)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을 모신 사찰이다. 창건된 지 1천200년이 넘는다. 유구한 세월 동안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고 있다.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불보사찰(佛寶寺刹) 통도사, 승보사찰(僧寶寺刹)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3대 사찰로 꼽힌다.

해인사가 창건된 것은 802년.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이다.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利貞) 화상에 의해 창건됐다.

해인사지(海印寺誌)엔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실려 있다.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이 났는데 어떤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사신이 두 스님을 찾아와 치료법을 물었다. 두 스님은 오색실을 사신에게 주면서 "이 실 한 끝을 궁전 앞에 있는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 끝을 아픈 곳에 대면 병이 나으리라"고 했다. 그대로 시행했더니 배나무는 말라 죽고, 왕후의 병은 나았다. 감읍한 애장왕은 전답 2천500결(結)을 보내오고, 창건 공사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해인사는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말이다. 해인삼매는 풍랑이 일던 바다가 잠잠해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같이 온갖 번뇌가 끊어진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다. 풍랑이 일던 바다가 매일 끊임없는 고뇌에 휩싸여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면 풍랑이 멈춘 고요한 바다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상은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법수사(法水寺)에 있었다. 절이 폐사된 후 용기사를 거쳐 해인사로 옮겨졌다. 비로자나불상을 매개로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인 해인사와 지금은 그 흔적조차 희미해진 법수사가 '인연의 고리'를 맺고 있는 것이다.

해인사지에는 용기사에 있던 비로자나불상을 해인사로 모신 연유가 나와 있다. "비로자나불상과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은 본래 성주군 금당사(金塘寺)에 모셨던 것인데, 금당사가 폐사될 때에 그 속암(屬庵)인 용기사에 옮겨 모셨다가 다시 용기사가 없어지므로 1897년 범운(梵雲) 스님이 해인사로 옮겨 모신 것이다."

비로자나불상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 그 높이는 2.35m.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상, 보현보살상과 같은 은행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보살은 실천을 통한 자비를 상징한다. 세 불상을 합쳐 대적광전비로자나삼존상이라 일컫는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수많은 위기를 넘겼다.

팔만대장경은 일본의 요구로 해인사에 보관되지 못하고 일본으로 보내질 뻔했다. 또 화재나 전쟁으로 사라질 위험을 몇 차례 겪었다. 임진왜란 때도 해인사는 승병과 의병들 덕분에 지켜졌다. 이때 소암(昭岩)대사가 이끄는 승병과 송암 김면(金沔), 내암 정인홍(鄭仁弘)이 이끈 의병들이 왜군들을 물리쳐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무사했다.

특히 6'25전쟁 때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잿더미로 변할 뻔했었다.

낙동강까지 내려온 인민군 900여 명이 퇴각하면서 해인사를 중심으로 가야산에 숨어들었다. 이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미군 사령부는 1951년 9월 18일 해인사에 공중 폭격을 단행하는 작전을 지시했다. 하지만 편대장 김영환(1921∼1954) 대령은 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을 알고 폭격 명령 지점인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 상공에서 편대기들에 폭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김영환 대령의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과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팔만대장경은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조선 과학의 집합체 신비로운 장경판전

팔만대장경판이 해인사로 옮겨지기 2년 전부터 해인사는 경판을 보관할 장경판전을 짓기 시작했다. 장경판전을 짓기 위해 조선 최고의 과학자와 건축가들이 해인사로 몰려왔다. 장경판전은 조선 과학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대적광전 뒤로 가파른 계단 위에 팔만대장경이라는 현판을 단 문 뒤로 장경판전이 자리 잡고 있다. 경내의 맨 뒤쪽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은 그만큼 장경판전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장경판전 마당에서 볼 때 바깥쪽에 해당하는 앞 건물은 수다라장, 뒤에 있는 건물은 법보전이다. 이 두 건물에 팔만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그 양쪽 끝에 있는 작은 건물은 고려각판을 모신 동서 사간판전이다.

장경판전은 가야산 중턱인 655m 높이에 서남향으로 앉았다. 주변 지형은 북쪽이 높고 막혀 있으며, 남쪽 아래로는 열려 있다. 남쪽 아래에서 북쪽으로 불어 올라오는 바람이 자연스럽게 판전 건물을 비스듬히 스쳐 지나가게 되어 있다.

수다라장과 법보전 두 건물의 각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 개의 창이 이중으로 나 있다. 아래 창과 위 창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큰 창을 통해 건조한 공기가 건물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함과 동시에 가능한 한 그 공기가 골고루 퍼진 후에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소금, 숯, 횟가루, 모래를 차례로 놓은 판전 내부 흙바닥은 습기가 많을 때는 머금고, 습기가 없을 때는 내보내 목재 보전 유지에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다. 경판의 변형을 줄일 뿐만 아니라 해충의 침입까지 막을 수 있도록 했다. 통풍이 잘 되고 일조량도 적당하도록 해 목판을 보존하는 데 최적의 조건인 항온, 항습의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있다.

장경판전이 서 있는 곳은 삼재(三災:풍재'수재'화재)가 들지 않는 터에 해당한다. 해인사가 창건된 이후 전역이 전소될 만큼의 큰 화재만 9차례나 났지만, 장경판전이 위치한 곳까지는 화기가 미치지 않았다.

장경판전은 신비로운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지붕 밑에는 거미줄이 쳐지지 않는다. 또 내부로는 벌레들이 침입하지 못하며 지붕 위에는 새가 앉지 않는 등 신기한 일이 적지 않다. 그리고 수다라장 입구에는 일 년에 딱 두 번 연꽃무늬 그림자가 생기는데, 절기 중에 봄과 가을을 알리는 춘분과 추분 이 두 날에만 그림자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재현 행사

합천군과 해인사는 2005년부터 팔만대장경 이운(移運) 행렬 재현 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이운은 대장경판이나 불화 등을 다른 장소로 옮길 때 하는 의식을 말한다.

특히 합천군은 2013년 9월 대장경세계문화축제를 열었다.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합천 해인사 법보전에서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로 옮기기 위해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재현 행사를 개최했다. 이 당시 해인사 주지인 선해 스님이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에서 원본 경판을 꺼내 가마로 옮겼으며, 스님들이 가마를 이고 해인사 경내를 돌며 이운 행렬을 시작했다. 취타대를 선두로 스님과 불자들이 이운 행렬을 뒤따랐다.

합천군은 2017년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성주군과 고령군도 올해 팔만대장경 이운 행렬 재현 행사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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