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중국 굴기

2003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권력을 거머쥔 후 처음 등장한 중국의 외교 전략이 '굴기'(崛起)였다. 후진타오의 브레인 역할을 한 개혁개방논단의 정비젠 이사장이 '화평 굴기'를 제시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굴기는 1980년대 덩샤오핑이 추진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와 1990년대 장쩌민의 '대국 외교'에 이어 중국의 핵심 외교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굴기란 말 그대로 산처럼 '벌떡 일어선다'는 뜻이다. 여기엔 침묵을 지키던 중국이 바야흐로 세계 최고로 우뚝 서겠다는 결기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를 감추기 위해 중국은 은근슬쩍 '평화'를 끼워 넣었다. 그냥 굴기가 아니라 '화평 굴기'(和平崛起)가 된 것이다.

앞에 '평화'를 붙여 희석하기는 하였지만 중국의 굴기 선언은 국제 사회의 경계심을 불렀다. 세계는 중국이 마침내 패권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의심은 현실이 됐다. 중국은 외교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모든 면에서 거침없는 굴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9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의 전용기가 영공에 들어오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전투기 네 대를 띄워 호위했다. 사우디 왕가 실세인 무하마드 살만 제2 왕위 계승자가 공항에 나가 시 주석을 영접했다.

두 번째 방문국인 이집트 정부는 더 극진했다. 8대의 전투기가 시 주석의 전용기를 에워쌌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직접 카이로 공항에 나가 시 주석을 맞았다. 시 주석은 이제 중동 마지막 순방국인 이란 방문을 남겨두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이처럼 시 주석을 환대하는 것은 중국의 굴기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과 자본은 이제 세계 그 어느 나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 급락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 분야에서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고 최근 핵협상 타결로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 또한 중국과의 협력이 발등의 불이다. 이집트는 시진핑이 갖다 줄 10억달러 정도의 차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국력 상승을 무기로 거침없이 초강대국의 행보를 이어가는 반면 우리나라는 뒷걸음질쳤다. 원자력, 고속철도, 반도체, 자동차 등 모든 시장에서 중국 굴기에 밀려 쪼그라들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잘산다고 우쭐대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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