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백만원짜리 집

'구미 마지막 600만원대, 즉시 입주 가능'. 며칠 동안 동네 어귀 현수막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아마도 3.3㎡(1평)당 가격이 그렇다는 아파트 광고 현수막일 것이다. 그 광고대로라면 그 아파트의 크기가 100㎡(30평)일 경우에 가격은 1억9천만원쯤 된다. 아파트값이 싸다고 광고하는 현수막을 보고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탓도 있을 것이고, 또한 필자가 새 임지로 부임받아 가는 곳마다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신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집값이 참 비싸다는 생각과 함께 다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왔다. '저 아파트 한 평 값이면 여섯 가족이 지낼 수 있는 집을 지을 수 있겠는데….'

구미로 옮기기 전 전임지에서 특별한 성탄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어느 구호단체에서 '베트남에 전하는 특별한 성탄선물' 행사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요청의 내용은 이렇다. "베트남의 가난한 땅끝 마을에는 산타가 필요합니다. 베트남 호찌민에서 버스로 8시간을 달려야 도착하는 땅끝 마을, OOO성. 이 마을은 수백 개의 하천과 개울로 이루어져 작은 보트나 다리가 없으면 학교에도, 병원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비가 새는 나뭇잎 집에 사는 주민 4만 명, 다리가 없어 매일 5㎞를 걸어 등교하는 학생은 1천 명이나 됩니다. 베트남의 가장 가난한 땅끝 마을, OOO성에 집과 다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100만원이면 집 한 채를 지을 수 있습니다. 100만원이면 베트남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지 4m×8m(약 10평) 위에 콘크리트 골조의 튼튼한 벽돌집 1채와 화장실을 지을 수 있습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가정을 선정하여 사랑의 집을 지원합니다. 500만원이면 길이 30m×폭 2m의 다리 1개를, 10만원이면 길이 1m×폭 2m의 다리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다리 건설은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과 외부와의 교류를 활성화시켜 지역이 자립하는 데 기초가 됩니다. 베트남 땅끝 마을에 희망의 다리를 선물하세요."

본당 대표들과 회의를 해서 다리 한 개와 집 다섯 채를 짓기 위한 1천만원을 모금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신자들의 호응이 좋았다. 신자들은 대림절(성탄을 준비하는 4주간) 동안 용돈을 절약하고 청년들은 초를 팔아 보탰다. 퇴직 기념으로 집 한 채 값(100만원)을 희사하신 분도 계셨다. 그렇게 해서 1천300만원이 모였다. 마을의 다리 한 개와 집 여덟 채를 마련한 셈이다. 이 모금액을 구호단체에 보냈고, 얼마 전 교량 및 사랑의 집을 다 지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준공식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그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행사를 마감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면담을 요청해 오셨다. "그동안 자식들이 준 용돈을 모았는데 신부님께서 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는 말씀과 함께 비닐봉투 하나를 내려놓고 가셨다. 봉투를 열어보니 1천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분의 소중한 희사금은 그분의 고운 마음과 함께 라오스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 프로그램에 사용되도록 기부를 하였다.

새집과 새 다리를 선물 받은 그 땅끝 마을 사람들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 우리 신자들의 행복한 마음도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싸다는 아파트 두 평 값으로 마을 사이를 잇는 다리 하나와 근사한 집을 여덟 채나 지을 수 있다니. 받아서가 아니라 내어줌으로써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나눔의 신비다. 나눔의 신비를 체험한 사람들의 행복한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로 전염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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