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퇴의 절규 느껴보니 모험심 없는 삶 되더라…『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박형신'정수남 지음/ 한길사 펴냄

이 책은 다른 감정이 아니라 '공포'에 주목한다. 공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예측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이면서 원초적인 감정이다. 기쁨이나 화, 슬픔과 함께 다른 감정을 파생시키는 일차적인 감정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사회학자들이 공포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에 대해 오늘날의 공포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공포는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하나의 감정을 넘어 개인들의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윤리의 토대이자 사회를 또 다른 모습으로 바꿔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을 점점 더 보이고 있다. 우수한 인재들이 의'약대나 공무원, 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군으로 쏠리는 현상이 대표적 사례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우리의 일상생활을 이처럼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은 가장 근접한 직접적인 원인을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지속된 경기침체와 노동시장의 유연화에서 찾는다. 수시적인 대량해고, 명예퇴직의 압박, 비정규직 고용의 증가, 노조조직률 저하, (청년)실업 양산 등 노동시장의 신자유주의화에 따라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불안정한 토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고, 이제 일상성은 단기성, 경쟁, 축소, 불안정성, 불확실성, 즉시성을 특징으로 하게 됐다. 이 책은 공포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사회의 감정 동학을 들여다봄으로써 거시적 감정사회학의 틀을 세우고자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감정은 사고팔 수 있는 자원으로 여겨진다. 일터에서 우리는 '감정 노동'을 일상적으로 해야 하며, 또 소비자로서 그러한 감정 노동이 포함된 상품을 구매한다. 카페의 점원이 친절한 미소로 고객을 응대하거나, 심지어 "커피 나오셨습니다' 같은 어색한 존댓말을 쓰는 것은 그러한 감정관리가 업무능력을 보여주는 핵심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오늘날 거대한 감정산업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감성마케팅, 감성치료, 심리치료, 감정지수 같은 기법들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내적 차원에서 그 원인을 찾고 그로부터 해법을 발견하려는 치료요법적 접근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나 근대 자본주의 체제는 물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와도 깊은 친화성을 갖는다. 감정연구가 개인의 내면세계로만 침잠해 들어간다면, 감정이 지닌 폭발적 역동성을 사회적 차원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계를 맞게 된다. 거시적 감정사회학은 감정과 사회구조 간의 연관성에 주목함으로써, 왜 특정 사건에 대해 사회 성원들이 서로 다른 행위를 보이는지 규명한다. 기존의 합리적 선택이론이나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걷어내고, 감정 동학에 따라 행위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감정 동학은 '행위자가 처한 상황적 관계적 맥락 속에서 감정적 행위의 주체로서 행위를 전개함에 따라 발생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의미하며, 배후감정은 '이러한 감정 동학을 이끄는 힘'이다. 저자들은 배후감정에 따른 '적극적인 맞춤형 사회정책'의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감정의 정책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연대의 감정'임을 강조한다. 타자와의 상호주관성 속에서 '인정' '존중' '호혜'를 이끌어내는 감정, 이것이 바로 격렬하고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한 고도경쟁사회를 고도연대사회로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감정적 토대이다. 432쪽, 2만4천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