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월 22일 안드레이 사하로프(1921~1989)는 체포돼 볼가 강변에 있는 고리키로 강제 추방됐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5년 만에 닥친 수난의 길이었다. 그는 6년 뒤인 1986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유배에서 풀려나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사하로프는 26세에 박사 학위를 받고, 1953년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32세 나이로 소련 과학아카데미 최연소 정회원에 선출됐고, 레닌훈장과 노동자영웅훈장 등을 받았다. 출세 가도를 달리던 그는 1957년부터 핵무기의 윤리성에 회의를 느끼고 '반핵'을 주창했다. 냉전 청산과 인류의 평화공존을 외쳤다. 1970년 11월 4일 저명한 지식인들과 함께 소련 인권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사형제 철폐와 정치범 사면 등을 요구한 그는 소련 정부에는 눈엣가시였다. 노벨상 수상 때, 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노벨평화상이 '인민의 적' 사하로프에게 수여됐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