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순재의 힐링토크] 한국 음식이 상향평준화 되는 그날까지! 요리평론가 이용재

'맛집'이란 명칭 사라져야…감상비평만으로 요리 발전 없다

사진 이성근객원기자 lily_37@naver.com
사진 이성근객원기자 lily_37@naver.com

외식업계에서 그의 악명은 상당하다. 여타 음식평이 감상비평에 근거한 것이라면 그의 음식평은 근거 있고 과정 또한 명확하다. 더욱이 그의 평은 건축학 석사답게 공학적이고 과학적이어서 탄탄하며 내공도 녹록지 않다. 요리평론이라는 말을 쓰기 거북해하는 한국의 풍토에서 그는 '요리평론가'라고 자신을 당당히 소개할 만큼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2013년 '외식의 품격'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이용재'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한국에 있는 음식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의 글을 빌리면 우리가 먹는 대개의 빵과 피자 치킨은 분명히 '괴식'(괴이한 음식)이다. '먹방'과 '셰프'가 대세인 요즈음,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TV만 틀면 요리 프로그램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두들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즐거움이 없는 시대여서 비교적 값싸고 쉽게 행복해지는 요리에 빠져든다. 새 자동차와 새 집을 사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음식은 아무리 비싸도 30만원을 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누리는 행복감은 크다.

-덩달아 요리사까지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얻고 있다.

▶엔터테이너에 가까운 요리사의 존재가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미국, 일본만 해도 이미 20년 전부터 요리사가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문제는 모두가 방송에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TV에 나오지 않지만 자기 요리를 잘하는 요리사도 많아야 한다.

-외국서도 방송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요리사가 많지 않은가.

▶외국의 경우 방송에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지명도도 중요하지만 방송 출연 때문에 요리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에서다. 또 방송에 출연하면 자기가 원래 추구하던 세계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나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50년 경력, 복수의 미슐랭 별 세 개 레스토랑 운영) 씨는 '셰프들이 방송 출연을 너무 많이 한다'고 말했다. 생각해 볼 문제다.

-'집밥'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준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대한 그리움이란 언제나 유효하고 강력하다. 집밥에 대한 가치는 여전히 소중하다. 다만 과거와 같은 형태로는 엄마가 해준 집밥의 가치와 정서를 담아낼 수 없다. 그런 현실을 알아차리고 잽싸게 파고든 현상 같다.

-당신의 글을 읽어보면 요리에 대한 내공이 상당하다. 어떻게 공부했나,

▶나는 호기심이 많고 다분히 활자 중독이다. 무엇인가를 계속 읽는다. 인터넷 시대다 보니 읽을 게 널렸다. 미국에서 8년 정도 생활하다 보니 언어의 장벽이 사라졌다.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음식 관련 논란의 상당수가 이미 영어권 국가에서는 연구와 실험 등으로 사실 확인이 돼 있었다. 그것을 제대로 전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을 딱히 공부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좋아서 했을 뿐이다.

-글이 상당히 비판적이다. 마치 기자의 글 같다.

▶기자의 역할은 보도지만 비평가인 나의 역할은 말 그대로 비평, 즉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가치 판단을 위해서는 분석이 필요하고, 분석이 자세해지면 그것이 비판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간혹 너무 비판적이어서 어려움은 없는가.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신경 쓰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한국에는 건설적인 비판 문화가 없다. 같은 맥락에서 제대로 된 비평 문화도 없다. 영화 비평도 리뷰나 줄거리 해설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작은 네트워크로 인해 서로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 원칙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 않고,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음식평론가의 정의를 내리면,

▶간단하게 말하면 음식의 가치를 직업적으로 따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내가 생각하는 정의에 맞게 음식평론을 하는 이도 없고 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음식평론가로서 나의 역할은 음식을 평론의 좌표에 올려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가하는 음식은 어떻게 정하는가.

▶요즈음 가장 이슈인 음식 위주로 맛본다. 롤 케이크가 유행이라면 찾아다니며 먹어보는 것이다. 주제를 갖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름이면 냉면을 찾아다니는 식이다. 재미와 관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리를 맛보기 전에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는가.

▶배가 너무 고파도 안 되고 너무 불러도 되지 않는다. 몸을 최적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하루에 여러 음식점을 다니는 것은 어렵다. 보통 이틀에 한 집 정도 가서 맛을 보고 글을 쓴다. 사람들은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먹는 것도 일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웃음)

-음식평론가는 요리를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미국에서도 음식평론가가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하는가?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어왔다. 그렇다면 요리사가 음식평론을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요리사와의 거리 유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밥을 만들어 먹을 줄 알고 빵과 케이크와 과자를 굽는다.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음식평을 할 때 지키려고 하는 원칙이 있다면.

▶먹고 읽은 대로 쓴다. 선입견이 없어야 한다. 감각에 의지하지 않는다. 감각에 기대면 인상비평으로 흘러 한량이 풍류를 읊는 꼴이 되고 만다.

-자신의 음식평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

▶오류야 있을 수 있으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억나는 사례는 없다. 글을 쓰고 난 뒤에 음식이 개선된 경우는 있다. 좌표에 대해 고민하고 정확한 비평에 대해 고민한다.

-얼굴이 알려지면 비평이 어렵지 않은가.

▶인터넷을 뒤져봐도 나의 사진은 거의 없다. 난 대접받고 싶지 않다. 나를 알아보고 음식을 준다거나 하는 건 더더욱 원치 않는다. 음식도 내 돈으로 계산하고 평을 쓴다.

-요리평론가로서 어려움이 있다면.

▶지면이 적은 것과 합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운 시스템이 힘들다. 합당한 대가가 아니면 '노'라고 말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당신은 음식의 맛이 주관적이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음식의 맛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맛은 주관적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은 '모두가 똑같다'의 다른 표현이다. 음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먹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맛을 두 가지 영역으로 구분한다. 감정적인 맛과 이성적인 맛이다. 한국의 음식 논의는 감정적인 맛에 치우쳐 있다. 엄마의 맛, 손맛 같은 것들이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요리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

▶'맛집'이란 명칭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음식 투정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이런 정서를 가지다 보니 '맛없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음식에 의외로 관대하고 너그럽다.

-왜 맛없는 식당이 있는 걸까.

▶맛없다는 것은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요리사의 음식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인과관계를 모르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음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기준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아예 부정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모두들 음식은 기술의 산물이라고 여기는데 나는 사고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요리도 자기표현이니까 음악이나 글쓰기나 미술처럼 콘셉트라는 것이 있다. 그런 것들이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손맛과 기술에 갇혀 있다. 요리는 기술의 산물이 아니다.

-당신이 먹어본 가장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답을 안 하겠다. 맛있는 음식이란 대부분 추억 속의 음식을 말한다. 음식의 감성적인 접근은 맞지 않다.

-건축 전공자다. 어떻게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공과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밟다가 그만두었다. 건축을 전공으로 선택했듯 기본적으로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 음식도 손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음식을 직접 만들 수밖에 없는 환경도 영향을 미쳤다.

-건축과 요리를 비교하면.

▶둘 다 힘들다. 할 만한 가치는 있지만 보상이 적어 상처를 받기 쉬운 것들이다. 공학적이며 미적이면서 기능까지 만족시키는 점은 아주 닮았다.

-셰프를 꿈꾸는 이들이 많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요리는 어려운 일이다. 체력 소모도 많고 불과 칼을 다루는 일이라 긴장을 해야 한다. 보수도 높지 않다. 지금은 셰프에 대한 '좋은 점'만 너무 부각돼 있다, 그래서 빨리 실망할 수도 있다. 요리를 배우기 위해 꼭 유학을 가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그 음식이 만들어진 곳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여긴다.

-앞으로의 계획은.

▶10년치 글쓰기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큰 그림이다. 다양한 주제로 음식에 대해 접근할 생각이다. 곧 책이 나온다. 그 내용은 비밀이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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