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학대의 그늘

유년기의 추억을 묘사한 문학 작품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이미륵의 자전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1946년 독일어로 발표한 이 소설의 도입부는 어린 시절 고향의 겨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촌형이자 단짝 친구인 수암과 보낸 천진난만한 시절에 대한 회상은 포근하면서도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작품에 묘사된 수암과 보낸 유년 시절은 작가의 인생에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정의 그루터기이자 자유로운 영혼의 자양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명절에 폭죽을 터뜨리고 제기차기에 습자지로 만든 연을 날리고 멱을 감는 풍경은 담백한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맑고 투명한 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이야기로 다 채우지 못하고 비워놓은 여백으로 인해 더 큰 울림을 준다. 유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장 뒤에는 눈을 감아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기억, 아버지의 죽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조용히 가슴으로 삭여야 했던 슬픔과 아픔이 숨어 있다.

독일어로 쓰인 '압록강은 흐른다'가 우리말로 처음 번역돼 나온 것이 1960년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00년대 초와는 반세기라는 시차가 있다. 하지만 지금 읽어도 독자에게 잔잔한 공감을 준다는 점은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다. 아직도 독일 바이에른'헤센주 등 일부 지역 교과서에 실려 읽히는 것도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지펴내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새 수은주가 급격하게 떨어져 땅과 물이 꽁꽁 얼어붙었다. 북한 일부 지역은 영하 35도까지 떨어지고 대구도 영하 10도를 웃돌 만큼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학대받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고 있다는 뉴스들이 잇따라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얼어붙게 만든다. 부천의 초등학생 학대 사건의 부모는 경찰 조사에서 "죽을 줄 알고도 때렸다"고 했다.

비뚤어진 정신세계를 가진 일부 부모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 때문에 어둡게 그늘 진 유년 시절, 매 맞고 자라나 부모 자식 간 인연을 끊어낼 정도로 가슴 아픈 기억이 인터넷 글에 넘쳐나는 게 현실이다.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는 유년·청소년기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의 싹을 자르고 빼앗아 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만약 그들이 이미륵의 소설을 대한다면 어떤 감정과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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